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지난 2010년 또 다시 근대건축물 하나가 사라졌다. 그래도 이번엔 지키기 위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노력했다. 대부분이 개인소유인 근대건축물은 소유주 동의를 얻어야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다. 때문에 강제성을 가질 수가 없기에 심심찮게 사라지는 것이다.

대전시 중구 대사동 99-7번지에 위치한 ‘대사동별당’은 1942년 공주갑부 김갑순의 별장으로 쓰였다. 김갑순은 도청 부지를 일제에 헌납하며 일급 친일 인사가 되어 있었다. 도청이 이사오고 나서 주변 땅값은 하늘높은 줄 모르고 뛰어올랐고 김갑순은 천문학적인 부자가 되었다. 간간히 잊지않고 일본제국에게 뇌물을 바치며 사회적으로도 승승장구했다. 대전부자들이 모여산다는 도청관사촌에서 별장을 짓고 오가는 모든 사람에게 자랑을 일삼았다. 그 시기에 만들었던 건물이니 오죽 잘 만들었을까? 유리가 끼워진 절충식 마루의 나무는 질이 너무 좋아 어제 끼워놓은 것 같다고 했다. 팔작지붕은 궁궐이 우습게 하늘로 솟구쳐 목수의 모든 솜씨를 빨아당긴 것 같았다. 1942년 지었을 당시에는 두 채의 건물에 연못까지 끼고 있었던 곳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이시영 부통령의 숙소로 쓰였고 20일 동안이지만 임시정부의 국무회의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500m도 안 떨어진 도청관사에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고 있었으니 위치로 적당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겨우 사일 동안만 관사에서 머물고 부산으로 떠나버렸다.

잘 지은 건물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친일파의 건물이라는 미움은 남아있었다. 1992년 이후 대전시는 문화재로 등록하자는 제안을 끊임없이 했지만 주인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없다”고 말하며 식당이 망하자 매각해버렸다. 대전의 요식업체 이 씨는 겨우 8000만 원에 사두고 분명 건물을 부시고 식당을 짓는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세를 바꿔 건물값 4000만 원을 주면 이전해도 좋다고 했다.

이에 한남대학교는 학교 내 선교사촌에 부지를 마련하여 이전 복원하겠다고 제안했다. 다행이었다. 이전비용만도 2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건축물이 무료일 경우였다. 대전시가 겨우 4000만 원이 없었을까? 건물주와의 직접 만남을 피하며 시간을 끌다가 끝내 포클레인 삽질 세 번에 날아가고 말았다. 노력은 각처에서 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아, 요식업체 이 모 씨에게 법적 책임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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