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슬픔’ 추상적 실체들 생생하게 묘사해 74편으로 승화

 

저녁비가 소슬하게 내린다
모두가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불빛이 명멸하듯 시들어지면
빗줄기는 굳은 길목으로 파고든다

깊은 어둠속으로 흘러가는 길
어느 창백한 가로등 아래 서면
우수憂愁로 부르튼 날들
가슴깊이 젖어드는데

무심히 발길 닿는 곳마다
물웅덩이
마음속에 쌓인 눈물일까
끝내 비워내지 못한 채 서성이며

안개가 밀어낸 바람결에
소리 없이 찾아 드는 슬픔
거기, 꺼지지 않는 한 시절
그 빗속을 거닐고 있다

뒤돌아보면, 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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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립감과 고독함 속에서 그리움을 느낀다. 그리움의 대상이 떠나버린 빈자리는 적막함과 고요함만 감돈다. 그 틈을 비집고 자라나는 공허함과 아쉬움은 불특정 다수를 바라보는 시각에 간절함과 애절함을 더한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이정숙 시인이 첫 시집 ‘뒤돌아보면, 비’(도서출판 지혜)를 발간했다. 흔히들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는 시인들을 영원한 노스탤지어(nostalgia)에 시달리는 존재로 보기도 한다. 이는 이 시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느 장소에 있어도 고향을 떠나온 존재로 이방인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그가 쓴 시집의 시적 주제는 그리움의 정서가 주조를 이룬다. 그리움과 슬픔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부재와 결핍에서 기인하는 정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상실하고 지내는 틈에 고개를 내민다.

또 이 시인의 시에서 부재와 결핍 역시 그리움과 함께 등장하는 주요 주제다.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저마다 차이가 있는데, 그는 어떤 대상의 부재와 욕망 등 결핍에서 기인하는 그리움 속에서 비를 눈물로 만들고, 눈물은 슬픔으로 승화시켜 이루지 못한 사랑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더욱더 간절하게 찾아 헤매게 한다.

이 시인은 과거와 단절을 통해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의 실체를 찾기도 한다. 현재의 삶이 갖고 있는 삭막함 등을 비어있는 존재로 보고 생생하게 묘사한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풍경과 세상을 통해 생생하고 실감나게 묘사된다. 일반적으로 묘사는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 보여주는 글쓰기다. 무언가를 보여주고 개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시인은 그리움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원래의 구체성을 회복시켜 보여준다. 심연에 남아있는 기억을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끌어내고자 한다.

추상적인 존재를 보여주는 이 시인의 묘사는 그리움 그 너머를 생각하게 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그는 현실 풍경을 보여 주는 것처럼 보여주는 듯하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시의 내면을 통해 그리움의 실체를 떠올리게 만든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언어들로 이뤄진 쉬운 시들이지만 결코 상투적인 감상에만 머물지 않고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끌어당긴다.

‘뒤돌아보면, 비’는 모두 4부로 구성돼 74편의 시를 담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 시인은 지난 2015년 ‘호서문학’ 우수작품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낭송문학대상, 목원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시인, 시낭송가, 한국낭송문학협회 부회장, (사)아노복지재단 전국글짓기 공모전 대회 심사위원, 자서전 전문 제작 ‘추억의 뜰’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관세 신문’에 이정숙의 시와 사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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