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일 정치부장

“기자님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취재 현장을 다니거나 공적으로, 사적으로 취재원이나 지인들을 만날 때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다. 촛불에 힘입어 탄생한 문재인정부 들어, 정치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로서 피부로 체감하는 특이한 ‘현상’ 중 하나가 이러한 질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의 개인적 경험이긴 하지만 박근혜정부까진 단도직입적으로 이념 성향을 묻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현 정부 출범 이후 나타난 이례적인 모습이다.
 
이전에도 “기자님은 어느 편입니까?”라는 말을 자주 듣긴 했다. 주민들 간, 이해관계자들 간 첨예한 갈등을 야기하는 이슈가 불거졌을 때 그 사안에 관심을 표명하거나 취재하려 하면 따라오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념적 스펙트럼을 기준으로 ‘내 편, 네 편’을 분별하려는 질문은 분명 현 정부 들어 빈번해졌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이념적으로 양극화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샤이 보수’나 ‘샤이 진보’, ‘중도’는 잠자코 입 닥치고 있으라는 분위기다. ‘회색분자’는 필요 없으니 흑인지, 백인지 분명한 정치적 ‘커밍아웃’을 하라고 강요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몰락한 보수우파 세력은 오매불망 정권 탈환을 꿈꾸며 세를 결집하면서 진보좌파 세력에 의해 ‘적폐’로 매도당한 데 대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고, ‘내로남불’의 대명사가 된 듯한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양 진영의 공방이 과열되고 있다. 최근에는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양분된 광장정치가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심히 우려스럽다. 이러다가 한반도의 반쪽인 대한민국이 분단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妄想)’, ‘기우(杞憂)’를 하게 된다. 한 퇴직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명절이면 오랜만에 만난 가족·친지들, 모처럼 시간을 맞춰 만난 친구들과 도란도란 재미있는 담소를 나눠야 하는데, 정치 문제가 화두가 되면 요즘 말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짐)’가 되곤 합니다. 아무리 허물없이 지냈던 사이라도 이념상 ‘우리 편’이 아니라면 말을 섞기가 꺼려져요. 대판 싸움을 할 각오가 아니라면요.”
 
정치권에 격언처럼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진보는 분열해서 망하고, 보수는 부패해서 망한다’라는 것인데, 최근 정국을 보면 그 반대로 진보는 파렴치하게 부패하고 있고, 보수는 오만하게 분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가 망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기화로 이리저리 요동치는 대한민국호의 미래가 암울한 것만은 사실이다.
 
내 편과 네 편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상처를 주고받는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증오와 질시가 판치는 대한민국, 이를 치유할 방법은 없는 걸까?
 
보수와 진보 외에도 우리 사회는 갑과 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주류와 비주류 등으로 양극화되면서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내 주장은 진실이고, 네 주장은 거짓이다’, ‘우리는 깨끗하고 너희는 더럽다’, ‘우리 편은 개혁 세력이고, 저쪽 편은 적폐 세력’이라는 흑백논리, 이분법적 사고에 따른 분열과 편 가르기, 낙인찍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한 발짝 물러서 상대 진영을 바라보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 열린 가슴으로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유와 민주, 평등의 가치에 기반한 다양성·다원성을 수용하는 배려와 포용,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적 화두이자 절실한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 첫 질문에 대한 답변. “저는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 약자의 편입니다.” 즉답을 피하려는 추상적인 답변이 아니다.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면 좋겠지만, 강자에 의해 핍박받는 약자, 힘 없고 소외된 서민들이 언론에서 대변해야 할 우리 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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