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어머니의 잠 

송태웅 

들창문 너머 
팔십 어머니는 
저녁내 잠을 못 이루고 
덜커덩거린다 

덜커덩거리는 것은 
그릇들이 아니라 
바람이 아니라 
나의 불면 
나의 몽유 

어머니는 나의 몽유와 나의 불감을 대신 앓는 것이다 
어머니의 생 전체는 실은 나의 몽유의 흔적인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잠 못 이루게 이 세상에 온 생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통째로 훔쳐 통일호를 타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생이었다 

반투명 유리로 된 
들창문 너머 
냉장고 문이 열리고 닫힌다 
나의 불면과 나의 몽유가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 냉장되고 
이번엔 어머니의 생이 
통째로 덜커덩거린다 
밤 새워 밤 새워 

▣ 바람이 불고 반투명 유리로 된 들창문이 덜컹거립니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지, 아니면 객지에 있다 오랜만에 어머니 집에 들렀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시인은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시인의 지난날 삶이 신산(辛酸)했음을 ‘나는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통째로 훔쳐 통일호를 타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생이었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날 이후 어머니 속은 얼마나 시커멓게 탔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시인도, 어머니도, 또 이 시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은 아버지나 다른 가족들도 모두 ‘몽유’하는 삶 속에 존재합니다. 몽유(夢遊, 꿈속에서 노니는)하는 삶은 현실의 삶을 마치 꿈을 꾸듯 꿈속으로 데려가,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흐릿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평소 삶을 대하는 시인의 시선이 그러하기 때문일 터인데, 그러다 보니 ‘반투명’한 몽유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삶과 나의 삶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하나가 되어 흔들립니다.

어머니와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함은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인데, 어머니의 덜컹거리는 생에 나의 불면도 깊어갑니다. 아, 가엾은 어머니.

조재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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