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문예창작학과 이은하 교수 소설집 '만약에 퀘스천' 출간

- 타인에 이끌리는 인생을 살며 철저하게 홀로 남겨진 그녀들
- 고독 속 찾아든 불안·우울·공포 '내면적 정황' 동물에 투영돼

‘나는 새끼손톱만한 구더기가 된 것 같았다. 흉물스럽게 나를 힐끔거리다가 언제고 커다란 구둣발로 내 몸을 짓이겨 놓을 것만 같았다.’

‘새벽녘이 될 때까지 나는 작은 의자에 앉아 사진을 보고 있다. 사진 속의 나는 타인처럼 낯설다.’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이은하 교수가 소설집 ‘만약에 퀘스천’(새미)을 출간했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나타난 아버지의 여자와 배다른 아들들로 인해 철저하게 타자가 돼가는 과정을 그린 ‘나는 그라스스네이크’를 비롯해 ‘나는 지금 버스를 기다린다’, ‘나비에게 전화를 걸다’, ‘황사 바람’, ‘달팽이의 노래’ 등 10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욕망하는 주인공들의 좌절과 상처를 색다른 화법으로 그려냈다.

등장 인물들 각자의 인생은 타자(他者)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고, 주변엔 어둠과 상처만이 도사리고 있다. 그 안에서 꿈틀대는 욕망은 단순한 성취욕, 성공, 성욕 등이 아니다. 자아를 찾기 위한 절규다. ‘만약에’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소설 속의 비현실적인 질문들이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독자 자신도 모르게 그 질문에 빠져들게 된다.

이은하의 작품에서 삶은 불행한 가족사를 견디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아버지는 무능하거나 부재하고 아버지를 대신히는 역할(오빠) 또한 병약하거나 미미하다. 따라서 집을 지켜내는 일은 오로지 여성 화자(話者)들에게 주어지고, 그녀들은 언제나 철저하게 홀로 남겨진다. 여성에게 홀로 남겨진다는 건 불안과 우울, 공포를 수반하기도 한다. 이러한 내면적 정황은 뱀, 고양이, 나비, 염소, 달팽이, 코끼리, 개 등의 동물에 투영돼 드러나며 현실적 맥락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한원균 충주대 교수는 “이은하의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타인으로부터 타자화된 인물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지만 그곳엔 언제나 상처나 함몰만이 놓여있다. 대개의 경우 아버지와 오빠, 사랑의 대상 등으로 명명될 수 있는 남성 혹은 남성성의 부재가 두드러지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이뤄지는 내파(內波)와 균열이다. 이 어긋남은 자신을 둘러싼 정황을 눈여겨보는 것. 그 풍경 속에서 자신은 왜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해석했다.

이은하 교수는 “달콤 쌉쌀했던 20대의 초상을 ‘만약에 퀘스천’에 담았다. 거룩하고 활기차게 하루를 보냈지만 내면의 시계추는 멈춘 듯 했던 그때. 마루에 걸린 괘종시계가 뎅뎅 울릴 때마다 비둘기 인형은 새장 속에서 ‘구구’ 앓는 소리를 냈다”며 “앓듯이 쓴 소설들이라 더욱 부끄럽다. 20대에 쓴 소설들을 추리면서 나를 닦고, 조이고, 가르친다”라고 출간 소회를 밝혔다. 또한 “감칠맛 나는, 조금은 짭조름한 소설을 이제는 쓰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명지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저자는 ‘아동문예’ 신인상, ‘아동문학평론’ 신인상, ‘한국소설’ 신인상, ‘세계동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장편동화 ‘콧구멍 속의 비밀’, ‘머리에서 자라는 풀잎’, ‘내 짝꿍 하마공주’, ‘쓰레기 형제’, ‘빼앗긴 일기’, ‘바람 부는 날에도 별은 떠 있다’, ‘사랑해요 아빠’, 동화집 ‘아이야 별이 되어라’, 이론서 ‘소설 창작의 갈등구조 연구’, ‘이준연 아동문학 50년’ 등이 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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