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원 사회부 차장

 조국 법무부장관이 전격 사퇴한 가운데 '조국사태'가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못지않게 난리난 곳이 있다.

충청권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화두다. 이에 신문·방송 할 것 없이 보도 문제로 내홍을 겪고, 국민들은 팩트를 제대로 보도하라며 '기레기'들에게 아낌없이 찬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세월호 당시 기레기 논쟁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언론이 '기레기 논란'으로부터 무고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때때로 펜을 흉기처럼 휘둘렀고, 하위 사람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따뜻한 기사를 쓰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위 1%와 손잡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호 당시 기레기 논쟁과 지금 조국사태 기레기 논쟁과는 결이 다르다. 과거에는 팩트에 벗어난 기사와 오탈자, 자극적인 낚시 기사 등에서 비롯해 기레기의 프레임을 씌웠다. 그 결과 ‘기자정신’을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JTBC는 세월호를 이후로 종편 프레임을 벗고 ‘저널리즘의 첨병’으로 부상했다. 수많은 언론이 기레기라 욕먹고 있을 때 JTBC는 다른 행보로 신뢰를 샀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6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찬사를 듣던 JTBC는 ‘TV중앙’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기자들은 기레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발버둥 친다고 벗어날 수 있긴 할까?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의 기레기 판별 기준은 ‘기자정신’보다는 ‘내편다움’에 가깝다.

실례로 서울 서초동 촛불집회 규모에 대한 논쟁이 이를 방증했다. 한쪽은 “이렇게 많은데 100만 명이라고 보도 안 하면 기레기다”, 다른 한쪽은 “무슨 이게 100만 명이라고 보도하면 기레기다”라고 말한다. 언론들은 무슨 선택을 하든 ‘기레기’의 운명을 피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쓰레기 소굴에는 쓰레기만 있다. 아무리 깨끗한 것도 오염되기 마련이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레기’들은 모욕을 모욕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후배가 말했다. “저도 밖에서 회사원으로 살면서 사무직으로 일할 걸 그랬어요.” 그다지 닮고 싶지 않고 배울 것도 없는 한 선배가 말했다. “그런다고 기레기가 아닐 거 같냐. 어차피 기레기 된다. 용쓰지 마라.” 한 때는 오염됐던 기레기들을 제거하기 위해 쓰였던 ‘기레기’라는 말로 인해 기레기가 득세하고 있다.

최근 재밌게 봤던 한 드라마에서 뼛속 깊이 새겨진 한 문구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시청률이 잘 나온 드라마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 말은 너무 가슴을 후벼팠다. “사람들은 진실엔 관심이 없거든요. 믿고 싶은 대로 믿을 테니까.”

‘기레기’라는 혐오발언으로 언론을 깨우쳐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국민들의 의도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에게도 ‘기레기’라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현 상황에서 알아야 할 것은 언론을 언론답게 만드는 건 저열한 조롱이 아닌 냉정한 비판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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