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수업시간에 ‘B끕 언어, 세상에 태클 걸다’에서 소개한 비속어의 유래와 원래 뜻 몇 가지를 알려줬다. 복도를 지나가는데 한 아이가 말을 걸어 왔다. “선생님, 저 이제 욕 안 하려고요. 뜻을 알고 나니까 못 하겠어요.” “그래, 참 잘 됐다. 알고 나면 못 할 말이 참 많지?! 그럼, 이제 선생님만 쓸게~” “네? 그러시면 안되죠~” “OO아, 농담이다~” “야, 니가 무슨 욕을 안 해?!” 야유하는 친구에게 그 아이는 바로 욕 한 마디를 던졌다.

교사 없는 교실에 '언어청정기'가 있다면 분명 빨간불에 경고음까지 울릴 것이다. 친교와 분노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아이들의 대화는 급기야 몸싸움까지 하고 말 태세다. 외줄 위에 홀로 서 있는 기분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는데 아이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저들끼리 웃는다. 좋아도 욕(같은 말), 싫어도 욕(같은 말)이니 구분하기가 참 혼란스럽다.
청소년들의 언어 실태와 원인을 분석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비속어를 자주 사용하는 중학생의 어휘력 수준은 심각하게 낮았는데,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감정 상태를 표현할 다양한 말을 갖고 있지 못하다보니 몇 개의 거친 말로 기쁨과 슬픔, 분노와 절망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상대방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대화 상대자의 반응은 대화 분위기를 더욱 험악하게 만들고 결국 폭력적인 대화로 치닫는다.

‘비폭력 대화’라는 주제로 연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손바닥 크기의 카드를 받았다. 거기에는 기분이나 감정을 세분해 나타낸 다양한 표현들, 예를 들어 ‘화가 나는’은 ‘분통터지는, 짜증나는, 불쾌한, 무시 받은, 수치스러운, 속상한’ 등의 비슷한 뜻을 가진 낱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강사는 카드를 갖고 다니면서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나타내는 단어를 찾아서 사용하다 보면 공감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바라보면…’ 초코로 만든 파이의 광고 노래 가사는 맞다가도 틀리다. 맛있는 먹거리를 앞에 두고 있는 사람 마음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사람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 마음 알기가 어려워 사람살이가 시끌시끌하다. 그 사람 마음은 나 몰라라, 날선 말 때문에 사람목숨이 위태위태하다. ‘말이 칼이 될 때’, 타인은 지옥이다.

바르고 풍성한 말 주머니를 하나씩 차고 있다면 어떨까. 스무고개게임 하듯 상대의 마음에 한 뼘씩 다가서는 과정은 섬세한 배려의 시간이 될 것만 같다. 제 마음 표현할 길 저도 몰라 욕밖에 할 수 없는 아이가 있다면 교사는 천천히 말 주머니를 열어 아이 마음에 맞는 말을 이것저것 정성스레 골라 건네주면 어떨까. 네 마음이 이러니 내 마음도 이렇다고 말 주머니에서 골라 내 마음도 전달하면 어떨까. 아이들한테도 말 주머니 하나씩 채워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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