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가후는 소년의 시체를 치우게 하고 태연한 모습으로 자기 방으로 가서 누웠다. 평상심을 만들어 잠을 자려하나 잠이 들지 않았다. 가황후는 이리저리 뒤척이다 날이 밝아 새소리가 요란할 때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런데 짧은 잠을 자는 가운데 꿈을 꾸었다.

무수한 독사가 가후의 몸을 칭칭 감고 돌며 붉은 혀를 날름거렸다. 가후가 놀라 소리를 지르려고 애를 썼으나 말문이 막혀 말을 생산하지 못했다. 가위에 눌린 탓이었다. 가황후는 이와 같은 병 아닌 병으로 한동안 시달리다가 잠을 깨어보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

이로부터 가황후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녀는 밤마다 꿈결에 헛소리를 지껄이기를

“어딜 가? 어딜 가? 어딜 가냐고…?”

복상사한 소년을 두고 꿈속에서 한 말 같은데 궁녀들은 모이기만 하면 작은 소리로 주고받기를

‘가황후 그 년이 천벌을 받았다.’ 고 쑥덕거렸다.

-조자룡의 손자 석늑을 기른 급상

진무제가 죽고 혜제가 즉위하자 황태후 양씨와 황후 가씨 사이에 외척의 대립이 크게 벌어졌다. 결국 여남왕 양과 초왕 위의 지원을 받은 가황후가 승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무제의 숙부인 조왕 윤이 군사를 끌어들여 가황후 일족을 살해하고 혜제를 추방한 후 황제의 위를 차지했다. 이에 제왕 경이 다시 군사를 일으켜 골육상쟁이 연출되었다.

AD 291년부터 306년 사이에 일어난 사마 8왕 간의 권력다툼이 이른바 골육상쟁으로 권력을 쥐기 위해 피바람을 일으켰다. 이때 싸웠던 8왕은 여남왕 양 초왕 위 조왕 윤 제왕 경 성도왕 영 장사왕 예 하간왕 옹 동해왕 월이었다.

8왕의 난은 7명의 제왕이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혜제도 독살되었으며 AD 306년 동해왕 월이 회제(懷帝)를 세우므로 해서 패권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8왕의 난으로 여러 왕들이 다투며 자기 힘이 부족하자 북방 유목민의 무장병력을 끌어들여서 서진이 멸망하고 화북을 오호(五胡)가 장악하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서가 말하는 이른바 5호16국시대인 것이다.

혜제가 즉위하고 나서 양준이 실각되고 가황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역사의 소용돌이가 치는 가운데 망촉 유민들은 부평초처럼 떠돌게 되었다. 장빈3형제 황신형제 조개형제와 그들의 어린동생을 등에 업은 급상 등 10명이 한중을 무사히 탈출하여 옹주와 양주의 접경지역에 이르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장빈과 급상의 등에 업혀 다니는 조늑이다. 조늑은 나중에 석현의 양자가 되어 석늑이란 이름으로 후조의 황제가 되어 중국대륙을 크게 차지할 인물이다. 하여서 조늑을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석늑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이 후조통일의 성공은 제갈공명보다 한 수 위인 천하모사 우후 장빈의 공적이 뒤에서 끈덕지게 작용했다. 이제 천하를 횡행하며 펼쳐질 이들의 파란만장한 주유천하를 따라가 보기로 하자.

장빈 일행과 만나는 사람은 다 같이 느끼기를 그 일행이 체구가 월등하게 크고 건강하고 풍모가 빼어나고 비범해 보이자 신분을 의심했다. 마치 도적이나 역도가 아닐까 의심하여 숙식을 해결하는 데 여간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이들은 몸에 지닌 병장기를 버리고 단도 하나를 몸에 숨기고 옹색하게 방랑을 시작했다. 여러 날 만에 장빈 일행은 하서 땅 흑망판에 당도하여 숙식을 해결하고자 헤매었다. 하지만 마땅한 먹을 곳을 찾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다. 하필이면 인가가 전혀 없는 흑망판에서 밤을 만나게 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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