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고 독창적인 시세계/사회 현상에 녹여 표현

 
 

돌이켜보면
나 지나온 길
그리 먼 거리인 것도
아니었더라

이정도면 많이 왔겠다 싶다가도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간해선 제 모습
훤히 내보이지 않는 경계

처음 목적한 곳의 고작 반, 그조차
가까스로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가기까지는
아직도 한참 멀었더라

그런 주제에 감히
아직 뒤에서 미적대는 이를 향해
여봐란 듯 비웃진
못하겠더라

그러진 못하겠더라 中
 

 

누군가 떠나버린 빈자리에는 그리움이 짙게 남아있다. 그리움은 떠난 이의 흔적을 쫓아 옛 추억을 더듬게 하고, 남아있는 이는 그 속에서 슬픔, 회환 등 여러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반복되는 인생에서 우리는 과거를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내다보기도 한다.

섬세한 표현과 풍부한 감성이 돋보이는 정우석 시인이 첫 번째 시집 ‘네가 떠난 자리에 네가 있다’(도서출판 시와 정신사)를 펴냈다.

지난 2014년 시와 정신사로 등단한 정 시인은 시에 대한 진지함과 동시에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순수함 속에서 자신만의 시세계를 밀고 나아가기 위해 시적 역동성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선명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의 은유는 구체적인 시적 형상화를 돕는다. 그는 또 리얼리티보다는 비유적 세계를 중심으로 서정으로 대상에 접근하다.

정 시인의 시는 자기반성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과거 유년 체험을 기억해내고 당시 느꼈던 감정을 체계적으로 형상화해 현재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본다. 그는 소회를 통해 반성을 하는데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고 정 시인의 시와 견주어 반성하도록 한다.

여리고 순수한 감성을 지닌 그의 시선은 자신을 넘어 사회적 약자와 피해자에게 향한다. 몇몇 그의 시는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힘없는 자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순을 꼬집는다. 산업화 이후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붕괴되고 있는 서민들의 삶을 냉철하게 묘사하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 문화 현상에 대한 비판도 함께 담아낸다. 지나친 악플과 가짜 뉴스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너무나 쉽게 번져가고 있는 가운데 시인은 고양이라는 존재를 등장시켜 할퀴고 헐뜯는 고양이의 동작을 보여줌으로써 우회적으로 주제에 접근해 경각심을 일깨운다. 이러한 그의 진솔함과 가식 없는 표현은 최종적으로 삶의 성찰에 접근하면서 ‘길’ 위에서 갈무리 된다.

‘네가 떠난 자리에 네가 있다’는 모두 4부로 구성돼 56편의 시를 담고 있다. 지난 1987년 강원도 영월에서 출생한 정 시인은 한남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 시인은 “어느새 등단한 지 5년이다. 대학원에서 써온 시들과 습작으로 모아 뒀던 시들을 다듬어 첫 시집으로 내 놓는다”며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첫 걸음을 떼는 심정을 담아 엮었다. 내 시는 이제 출발점을 지나고 있다. 오래갈 수 있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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