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여섯 발 아가

이영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이던 인간
길어진 밤에는 때때로 여섯 발이므로

수직을 잃어버리고 수평에 기울어진 아버지
한 발짝 두 발짝
온몸을 네 발 보행기에 의지하고
발걸음 내딛고 있다
요양병원 문을 열고 다시
걸어서 나갈 수는 있을까
최초의 몸짓으로 최후의 몸부림으로
발자국 떼고 있다
휠체어에 앉은 뿌연 눈빛들이 한 걸음씩 뒤따라온다

걸어온 몇 발자국 십 리만 같고
더 걸어가야 할 몇 발 앞은 백 리처럼 먼데
앙상한 두 다리 벌벌 떨리고 숨소리 거칠다
여섯 발 걸음이 향하는 곳, 어둠이 깊다
걸음마 걸음마
한 발 더, 두 발 더…
 

▣ 나이 들수록 사람은 수직에서 수평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러니 자연 보행기에 의지할 수밖에요. 그나마 보행기에 의지해서라도 걸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다행입니다. 그마저도 어려우면 휠체어에 앉거나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하니까요.

‘앙상한 두 다리 벌벌 떨리고 숨소리 거칠게’ 겨우겨우 뗀 걸음걸이가 ‘몇 발자국 십 리만 같고 / 더 걸어가야 할 몇 발 앞은 백 리처럼’ 멉니다. 그렇게 ‘최초의 몸짓으로 최후의 몸부림으로’ 힘겹게 걷는 모습을 ‘휠체어에 앉은 뿌연 눈빛들이’ 바라봅니다. 그래도 저니는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하는 선망의 눈빛으로. ‘뿌연 눈빛’-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눈자위 짓무른 눈빛으로.

요양원에 가면 이런 분들 많습니다. 완전 수평으로 눕기 전 안간힘 다해 생의 끈을 움켜쥐고 있는 분들. 그 분들은 여섯 발 아가가 되어 한 번 걷는데 보폭이 10㎝. 바짝 마른 몸피에 핏기라곤 찾을 수 없는 얼굴. 그러나 그렇게라도 살아계신 게 얼마나 좋은지요.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도 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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