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유정 대전상지초 교사

 

그런 날이 있다. 갑자기 스쳐간 제자들이 생각나는 날. 유독 예뻤던 친구들, 유별나게 속 썩이던 놈들부터 하나하나 꺼내보다 보면 하룻밤은 금세 지나가곤 한다. 다행히 이런 나의 사랑이 외사랑은 아닌지, 가끔 한 번씩 지난 제자들에게 연락이 오곤 한다. 그 중에서도 첫 제자들은 조금 특별해 연락이 오면 괜히 더 반가운데, 얼마 전 그 첫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수능 50일이라고 J고 1회 졸업생 동창회에서 초콜릿 주셔서 쌤 생각나서 연락했어요”라고. 내가 J고 출신인 것까지 기억해 주다니, 기특해 죽겠다. 덕분에 첫 제자 추억놀이에 흠뻑 빠져버렸다.

나는 나고 자란 동네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지냈다. 무려 첫 발령지도 그 동네였다. 첫 발령 시절 근무하던 학교와 담벼락을 공유하던 학교가 J고였고, 나의 제자의 대다수가 다니고 있는 학교인 동시의 나의 모교인 학교가 바로 그 J고이다. 내 첫 제자들은 나의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한 것이다. 여러모로 더 각별할 수밖에.

그 아이들이 벌써 고 3이란다. 키가 내 가슴팍 언저리였던 놈들이 훌쩍 커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지더니 이제는 수능이 50일 남았단다. 넉 달 후에는 성인이란다. 기분이 묘해진다.

첫 제자. 그들은 언제나 첫 사랑마냥 애틋하다. 나부터 매사에 땅 파던 신규 시절을 함께 보낸 녀석들이다.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담임, 어리숙한 담임, 매번 땅만 파는 담임 탓에 함께 땅만 파게 한 것 같아 늘 미안했다. 그래서 더 많이 울면서 졸업시킨 첫 제자들이었다. 연속으로 2년을 담임 한 탓에 미안함은 일곱 배로 늘어났다. 그런데도 그들은 항상 날 아껴주었다.

당시 청소 업무를 맡아 주문한 청소도구를 각 학급에 배분하는 업무 중인 나를 보며, '선생님이 학교에서 막내라 이런 작은 일 하시는 거예요?' 라며 분개해 주었고, 졸업 후에 찾아와 선생님 3년 전이랑 똑같은 옷 입고 계시다며 옷이나 사 입으라고 사 주겠다는 치킨을 마다했던 녀석들이다. 갓 발령받아 어리버리했던 나보다 더 어른스러웠던 어린이들이었다. 내가 알게 모르게 많이 의지했던 제자들이라 더 애틋하고, 한 번 떠오르면 끝없이 추억하게 되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런 내 첫 제자들과 내일 모레면 같이 '치맥'도 할 수 있단다. 그 녀석들 다 모아놓고 같이 치맥 한 번 하는 것이 내 작은 소망이라면 어떻게 생각하려나. 비웃으려나, 아니면 기쁘게 나와 주려나. 한참 귀엽고 꼬마 같던 녀석들이 이제는 쑥쑥 커서 수염 달고 능글거리는 꼴을 보면 징그러우면서도 여전히 사랑스럽다.

언제나 너희 가는 길은 반짝반짝하길 늘 기원한다. 수능도, 취업도, 그 어떤 일도 너희를 괴롭히지 않길 바란다. 늘 응원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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