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김기옥 사유담협동조합 이사

 

가을 쌍청당을 보지 않고 어떻게 대전을 봤다고 할 수 있을까요? 11월에 둘째 주를 넘어가려면 나무는 아파 죽는다고 새빨갛게 달아오릅니다. 단풍입니다. 단풍이 절정이면 사람은 예쁘다고 난리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나무는 아프다는데 사람은 곱다고 합니다. 뭔가 잔인하지만 그래도 단풍이 곱게 물들면 저는 쌍청당에 들릅니다. 고려가 조선으로 넘어가던 시점에 부사정을 지낸 무관, 송유의 별당입니다. 대도시안에 이런 고택이 남아있는 이유는 여전히 은진송씨 가문이 이 고택을 지켜가며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송유는 23세 되던 해에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낙향한 이유는 정치에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개성에 살던 송유 가문은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 집안과 가까웠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이 강씨의 무덤을 이성계와 함께 모시지도 않고 예의를 지키지도 않아 내려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처음 회덕으로 내려온 것은 회덕황씨와 결혼한 송유의 할아버지 송명의입니다. 그러나 자손이 번성한 것은 쌍청당 송유 때부터 라고 해서 은진송씨들은 두 할아버지를 각각 모셔드립니다.
1432년 낙향하여 44살이 되던 해에 지어진 쌍청당은 대단히 정성을 많이 들인 건물입니다. 지금이야 대도시 안에 있지만 과거에는 논밭이 훤하게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민가에 단청을 칠하지 못하게 했지만 쌍청당은 화려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마도 건축규제가 없을 때 지었거나 효심이 지극한 자손들이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도 아니면 명재상이 많이 나온 회덕이었으니 왕이 허락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후손이 살고있는 고택을 지나 오른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깊은 숲같은 정원을 지나 정자를 왼쪽에 두고 쌍청당이 높게 솟아있습니다. 정면 세칸 옆면 두칸의 건물은 왼쪽 두칸은 온돌, 오른쪽 네칸은 마루입니다. 건물은 일곱번이나 증축돼 옛모습 그대로인 줄은 알 수 없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살아있는 조선초기의 주택이라고 말합니다. 송유의 호는 박연과 박팽년이 지어줬다고 하는데 그 뜻은 ‘청풍(淸風)과 명월(明月)의 기상을 가슴에 새긴다’입니다.

친한 친구 한 분은 조선의 음악을 정리한 문인 박연이고 한 분은 세조에 반대하여 목숨을 내어놓은 박팽년입니다. 쌍청당의 친구들만 보아도 은진송씨 가문의 성향을 읽을 수 있겠지요? 쌍청당에 가면 과거 보문산이 훤하게 보였다는 복무정이 있습니다. 심지어 우물도 남아있습니다. 마을 우물이 아니라 가문의 우물입니다. 쌍청당에는 여름과 가을이 가장 아름답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을이 최적입니다. 맘고운 종손분이 살고계시니 조용히 감사를 표하며 다녀오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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