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한번 계절이 저문다.

 

 

대청호 2019 마지막이야기 : 다시 떠오를 순간을 기다리며

세상 모든 사람에게 유일하게 공평한 것은 바로 시간이다. 돈의 많고 적음에도, 사는 곳의 차이에도, 인종의 다름에도 개인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하루 24시간으로 모두 같다. 그리고 달력이 한껏 가벼워진 요즘,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새해 들어서면서 나름대로 소박한 꿈을 이뤄보리라 다짐하고 계획을 세우지만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일상을 살다보니 아쉬움만 가득 남았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후회해 봤자 무엇 하랴. 내일 다시 만날 붉은 해를 기대하며 오늘을 잘 마무리하기로 마음먹는다.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있는 것이기에.

 

 

능선을 넘어가는 붉은 해가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뜨거운 일몰, 찰나의 감동

늦겨울부터 시작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대청호오백리길 1~5구간의 변화를 담았던 올해, 그 여정의 마지막은 대청호오백리길 의 해질 무렵 풍경을 담아보기로 했다. 대청호의 아름다움은 사시사철, 아침저녁 그 어느 때라도 비범하지만 노을은 또 다른 묘미가 있는 탓이다. 어쩌다 고개를 돌려 무심코 바라본 노을, 그 광경에 넋을 잃고 한참을 쳐다보았던 기억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매일 반복되는 일이지만 노을은 같은 풍경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해가 제 집을 찾아 돌아갈 즈음,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때면 세상이 숨기고 있던 또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길지 않은 시간, 마법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에 그 광경은 매일 새롭고 저마다의 감상이 다르다. 누군가는 활력을 잃어가면서 토해 놓은 붉은 그림자에 대해 애절함을, 저녁노을이 빚어내는 붉은 빛에 숙연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건 단연코 아름다움이다.

 

 

해질무렵 찾은 대청호는 또다른 비경을 선사했다.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다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 두메마을길. 노을을 찾아 도착한 곳은 로하스가족공원 오토캠핑장 인근. 대청호오백리길 21구간 대청로하스길과 인접한 곳이다. 저 멀리 산 너머로 얼굴은 감추었지만 아직 남은 붉은 빛이 세상을 감싼다. 사계절 내내 푸른 대청호도 이 시간만큼은 잠시 붉게 변모한다. 말 그대로 장관이다.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 찬샘마을에서 본 노을은 아련한 느낌을 준다. 추수를 끝낸 논과 알록달록 변해버린 나뭇잎들 사이로 재빠르게 숨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마을길을 어슬렁거리던 고양이와 개들도 이제는 집에 돌아갈 시간이라는 걸 아는지 사라져 더 적막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산동 석양. 세상을 감싸는 붉은 기운이 호수에 번지며 환상적인 그라데이션을 만든다.

 

호반열녀길인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에선 마산동 전망대에서 노을을 맞았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슬픈연가’ 촬영지와 드넓게 펼쳐진 대청호를 배경으로 몸을 숨기는 모습은 제법 운치 있게 다가온다. 여기에 인근 가게를 찾은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마치 영화의 OST처럼 귓가를 간질이며 운치를 더한다.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호반낭만길)하면 떠오르는 추동생태습지. 그곳에서의 노을 풍경은 아쉬움이다. 우뚝 솟은 계족산 자락에 너무나도 일찍 모습을 감춘 탓에 쉽사리 제대로 된 노을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는 이미 숨었지만 그 에너지는 추동생태습지 전반을 더 진하게 만든다. 갈대와 억새의 은빛도, 단풍의 붉은 빛도, 대청호의 푸른 빛도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다.
백골산성낭만길인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에선 흥진마을 갈대밭 추억길에서 노을을 만났다.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와 탁 트인 대청호, 드높은 산 뒤로 모습을 감추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멋지다는 생각과 함께 기대감이 들기 시작한다. 오늘은 끝나가고 있지만, 그래서 내일이 올 것이라는 그런 희망 말이다.
글=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
사진=조길상·정은한·김정섭·박정환·신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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