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조재도 시인

 

태백산행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 살이야 열아홉 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 쉰일곱이면 사실 어떤 나이인가요? 배가 나오고 머리가 희끗희끗 희어져 자신이 느끼기엔 나이가 들었다 싶겠지만, 노인들(혹은 태백산 주목)이 보기엔 ‘조오홀 때’가 아닌가요? 그래서 그즈음 나이를 노년이라 안 하고 ‘중장년’이라고 하나 봅니다. 아직 한창때라는 거겠지요.

눈이 와 태백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아내가, “지가 열일곱 살이야 열아홉 살이야” 하며 구시렁댑니다. 집에 가만히 붙어 있지 뭐 나올 게 있다고 눈 오고 찬바람 부는데 밖으로 쏘다니냐는 거겠지요. 그렇지만 가야 합니다. 어디 가서 바깥바람이라도 쐬고 와야 한두 달 또 견딜 만큼 속이 메말랐거든요. 이런 속내를 아내는 모릅니다. 탑탑한 집안에만 갇혀 있는 게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인지를 아내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자꾸만 눈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입니다. 시인과는 어떤 사이일까요? 시인더러 늙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걸 보니 예사 관계는 아닌 것 같고, 너나들이 하는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렴요, 나이에 상관없이 이물 없게 말을 주고받을 그런 사람 하나쯤 있다는 게 어디겠어요? 탑탑한 도시생활에 산소호흡기 같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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