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유정 대전상지초 교사

 

진유정 대전상지초 교사

요리, 수공예, 목공예, 드로잉 등등 오리고, 붙이고, 만드는 활동을 나는 좋아한다. 그래서 교대 시절 선택한 심화 전공은 실과였고, 학급 담임으로서 가장 좋아하던 수업은 미술과 실과였다. 덕분에 교실과 벽은 아이들 작품으로 넘쳐나곤 했다.

올해의 나는 하나의 교과만 전담하는 교과 전담 선생님이다. 실과나 미술 전담선생님이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주 21시간 영어만 수업하는 영어 선생님이다. 그래도 여전히 한 단원의 한 번 정도는 반드시 미술수업을 한다.

영어 시간에 미술 교과를 접목 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제안하는 말하기 단원에서는 영어로 포스터를 그렸고. 길 찾기 단원에서는 동네 지도 위에 외국인과 영어로 길을 묻고 답하는 말풍선을 단 자신들의 인형을 만들어 세웠다. 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단원에서는 각 음식의 특징과 조리법을 소개하는 레시피북을 만들어 교실 한 켠에 전시해 두었고, 지구를 지키자 단원에서는 ‘소중한 지구’라는 주제로 시를 쓰고 시화를 그렸다.

덕분에 교실 벽엔 알록달록한 학생 작품으로 가득 차 있고, 학생들은 영어 수업 전, 후의 쉬는 시간마다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한 번씩 묻기도 한다. “선생님, 영어 시간이에요, 미술 시간이에요?” 난 대답한다. “미술시간 같지만 영어 시간이지!” 내 수업에 즐겁게 찾아오는 영어 교과를 싫어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의 영어 수업이 미술 수업 같다면, 우리 학교 체육 선생님의 수업은 음악 시간 같다. 평소 음악을 즐기시는 그 선생님은 체육 시간에 음악을 사용한 수업을 많이 진행하신다. 준비 운동에도, 온갖 활동에도 배경음악을 활용하신다. 때로는 활동 시 학생들이 노래를 직접 불러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 분의 체육 시간은 늘 흥겹다. 얼마 전에는 표현활동(무용) 단원의 평가를 위해 아이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수업을 하셨는데, 모든 학년 친구들이 강당에 모여 서로의 무대를 관람했다. 나 역시 운 좋게 그 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는데, 마치 하나의 콘서트를 보는 기분이었다. 평소 강당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 익숙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듯했고, 그 날의 체육 시간은 그야말로 화합의 장이었다.

조물조물 무엇이든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이 오리고 붙이고 만드는 영어시간으로 수업에 반영되었듯 교사의 성향은 수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런 선생님의 성향을 파악하고 수업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사의 성향을 흡수한다. 교사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도 즐길 줄 알게 되고, 교사의 긍정적인 성향이 학급의 학생들에게 전해져 긍정적인 학급이 형성되며, 깔끔한 교사의 학생들은 깔끔해지곤 한다. 그리고 2학기 중반쯤 지난 어느 날 고개를 들어 보면 날 닮은 25명의 내 새끼들이 내 앞에 눈을 반짝이며 앉아 있다. 그래서 교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오늘은 그런 기분을 느낀, 바로 그 날이었다. 이뻐 죽겠다, 내 새끼들. 내가 더 열심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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