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막고 물 만나는 '장풍득수국 명당' 개경

 

우리나라에서 풍수사상이 가장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논의된 것은 조선 개국 초 도읍(都邑)을 정할 때였다. 이때 후보지로 거론된 곳은 풍수사들에 의해 회자(膾炙)된 우리 국토 가운데 도읍이 될 명당으로 개성의 송악산, 한양의 북한산, 공주의 계룡산을 포함한 3대 길지이다. 이들 개경·한양·계룡은 오늘날의 도시입지론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 타당성이 돋보인다.

개경은 전 왕조인 고려의 수도(首都)로서 일차적으로 조선의 도읍 물망에 올랐다. 한반도의 중앙부를 차지하며, 예성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강화(江華) 북쪽 연안에 인접되어 있는 지역이다. 백두산의 정기가 낭림산맥을 지나 원산 서쪽 마식령산맥에서 남서향해 임진강 상류에까지 연결되는 형태이다.

개경의 산세는 험준함은 없고, 대체로 저산성의 구릉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위가 거의 모두 산지로 돼 분지상태(盆地狀態)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풍수상 바람을 막고 물을 만나는 전형적인 장풍득수국(藏風得水局)의 명당이 된다. 왕궁의 소재지인 만월대(滿月臺)를 중심으로 개경의 진산인 송악산(松岳山)이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일출봉과 남산, 서쪽으로는 월출봉과 봉명산, 남쪽으로는 해안지대로서 상대적으로 험준하다고 볼 수 있는 산세로 둘러싸여 있다.

권태달 부동산학 박사

개경 정기의 진원지로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이 산은 신라 말기의 도선대사가 말한 수모목간(水母木幹)의 형세로 산세가 극히 길고 심원하며 대단(大斷)하여 송악이 되었다. 기세가 웅건(雄健), 박대(博大)하며, 바람의 기운인 풍기(風氣)가 평양에 비하여 더욱 짜임새 있고 견고하며, 주위 경관이 모두 아름답다. 개경의 입지는 장풍에 따라 주변 산세가 조밀하여 판국이 넓지 못하고, 북쪽 산 여러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계류수는 모두 중앙에 모인다.

따라서 역세(逆勢)의 수덕(水德)을 진압하고, 지덕(地德)을 비보(裨補)하기 위하여 도선대사의 사탑비보설(寺塔裨補說)을 응용해 계류의 합류점과 내수구(內水口)에 사찰을 건립하여 액운을 막게 했다. 하천의 범람이 우려되는 취약지점과 합류점에 사원을 건립함으로써 인공 건조물에 의한 하천의 측방 침식을 억제하여 도읍의 면모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됐다. 하지만 400년이 지난 고려의 기운은 다했고 조선을 세운 신진사대부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도읍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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