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풍과 득수 고루 갖춘 전형적인 명당 지세

풍수사상의 관점으로 볼 때 우리 국토 가운데 도읍이 될 명당으로 개성의 송악산, 한양의 북한산, 공주의 계룡산을 포함한 3대 길지이다. 이들 개경·한양·계룡은 조선의 개국 시점에 3곳이 물망에 올랐으며 현재와 통일 후의 수도 입지론에도 단연 3곳이 돋보인다. 가장 먼저 수도가 된 개경은 고려 400년의 도읍 역할을 하고 조선의 시대는 북한산 아래 한양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한양은 풍수상 장풍과 득수를 고루 갖춘 전형적인 풍수 명당의 지세이다. 현무인 주산은 북악산이 되고 청룡은 낙산(駱山), 백호는 인왕산이며, 주작은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안산은 남산, 조산은 관악산이다. 물의 흐름인 수세(水勢)적 관점에서 보면 안쪽에 흐르는 내수(內水)인 명당수는 청계천이며 객수인 한강과 명당수인 청계천은 그 흐름의 방향을 반대로 하는 내외수류역세(內外水流逆勢)의 형국으로 물이 빨리 빠져 나가지 않고 명당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복과 재운을 오래 간직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강은 서울 부근에서 한양을 북으로 감싸듯 돌며 서울 남쪽을 지나 북서진하는 대규모의 곡류하천 형태를 취한다. 청계천이 동쪽으로 도성을 관통해 한강으로 유입되는 데 대해 한강은 서진(西進)하기 때문에 명당수와 객수는 완연히 역세의 국면을 가지게 되는데 심한 홍수에 의한 범람이 일어나는 경우라 할지라도 도성 안이 침수되는 것을 방지하여 주고 있다. 외수(外水)인 객수(客水)는 한강인데, 안산과 조산 사이를 빠져 흐르며 명당을 크게 감싸 안고 있는 형세를 취한다.

권태달 부동산학 박사

이에 반해 산의 흐름인 산세(山勢)를 살펴보면, 북악산과 인왕산, 모악을 중심으로 도성의 배치를 주장했다. 한양의 북서쪽인 모악은 신촌·서강 일대이다. 모악은 이방원의 최측근인 하륜(河崙)이 주장했던 땅으로 나라의 중앙에 있어 교통도 편하고 수리의 이점은 있으나 불행히 한 동네에 위치하여 궁전과 종묘를 넓게 잡을 수 없으며 명당 좌처(坐處)가 협착하고 주산이 저미(低微)해 겨울철 한랭한 북서계절풍을 막기 어렵고 수구(水口)가 관쇄(關鎖)하지 못해 한양에 비길 만한 곳이 되지 못한다. 또 인왕산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왕사(王師)인 무학대사가 지목한 자리였고, 북악산은 태조의 최측근이자 오른팔 역할을 하고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인 정도전이 지목한 자리로 두 곳 모두 장단점이 있으나 결국 정도전의 승리로 한양 도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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