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이렇게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낸 왕복도는 장빈일행이 흑망판에서 만난 도적 떼의 괴수에 대하여 그 내력을 풀어 놓기를

‘흑망판의 수괴는 기안이란 사람으로 호를 벽안표라 하는데 용맹이 절륜하였다. 본래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한 것이 없이 자란 탓인지 독살스럽고 매몰찬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벽안표는 어려서부터 남들과 힘과 재주를 겨루며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남과 싸우다가 지면 거금을 드려서 창봉술을 습득한 후 상대를 이겨내고 마는 성정의 소유자였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작당을 지어 멀고 가까운 고을을 쏘다니며 난봉꾼이 되었다. 그는 작당을 하는 과정에서 함부로 싸우고 때리고 치고 박고 눈에 보인 것은 다 손해를 입히자 상대해 주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만 독불장군이 되고 말았다. 그런 벽안표를 그의 부모들은 17세에 장가를 들였다. 그의 처는 흔치 않는 미인으로 조행이 반듯하고 성정이 정숙한 여자였다. 몇 해 동안은 남편의 방자함을 보고도 참고 조신하게 살았다. 그러나 남편 벽안표가 점점 흉악해 지고 가산마저 탕진해 버리자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죽고 말았다.

그리고 또 다른 괴수는 성명이 조의란 사람으로서 본래부터 무뢰배로 자랐다. 단순하게 말하면 다리 밑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위의대장군 조상의 후예로서 사마의의 해함을 피하여 이곳 까지 밀려왔다고 주장하였다. 그런 조의도 용력이 출중한 터라 벽안표와 재주를 겨루어 보니 막상막하여서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함께 행동하며 지냈다. 그들은 비록 도적질을 하며 살지만 의협심이 강하여 선량한 사람은 해치지 아니하고 약한 자는 도와주었다.’

주인 왕복도가 긴 이야기를 마치자 장빈이 무릎을 치면서 말하기를

“대인께서 저들의 내력을 이토록 잘 아시니 우리가 어제 빼앗긴 행낭을 찾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왕복도는 고개를 두어 번 저어 보이며 말하기를

“저들은 도적으로서 재물이 손에 들어오면 곧장 탕진해 버립니다. 진정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 싶다면 아까 보았던 젊은이의 아버지 진원달(자는 장굉)에게 청해 보십시오.”

“아아! 진원달이라 하시었습니까? 대인께서 진원달 그분을 소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장빈이 왕복도가 말하는 틈새에 끼워 부탁했다. 왕대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장공이 부탁하신 말씀은 새겨 두겠습니다. 우선 진원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움직여도 늦지 아니할 것입니다. 진원달은 원래 조후부 사람입니다. 그의 고향이 전란에 휩싸이게 되자 권속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옮겨와 사는데 대대로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는 능히 육도삼략을 아는 현인입니다. 육도삼략의 저자 태공망(太公望)은 60가지 속임수와 30가지 전략을 창안하여 그 책을 육도삼략 (六韜三略)이라 했습니다.

태공은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 앉아서 때가 되기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72세 때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만나 의기(義氣)를 펴고 마침내 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강태공은 정곡(正鵠)을 찾아낼 수 있었든 예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가 강조하기를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때가 되면, 주저하지 말고 치라. 어리석어 보이는 적은 속임수에 달관할 수도 있다고 보아야 하니 조심하라. 달아나는 적을 장기간 추격하다가 나무가 많이 잘라진 상태를 보면 적(敵)은 군사를 모아 창을 만들어 역습기회를 노린다고 판단하라.’

이런 골자로 육도삼략이 엮여있다. 진원달은 이러한 깊은 술수가 숨어 있는 책을 깊이 헤아려 알고 그의 덕성은 멀리 알려졌으며 문장도 한 나라를 다스릴 만큼 깊습니다. 남의 어려움을 주저치 않고 도와주고 감싸 안아주며 희생과 봉사하는 것을 즐기면서 때를 기다리며 숨어 사는 인물입니다. 이제 이 사람이 서장 한 장을 써서 드릴 테니 가지고 가시면 기안과 조의 두 괴수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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