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2013년 2월,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무한도전, 200일간의 독서마라톤’에 신청했다. 3월부터 11월까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나누어주는 독서마라톤 일지에 자유롭게 기록하면서 읽은 쪽수를 누적하여 완주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신청서에는 ‘탐라코스(5000쪽)’를 시작으로 ‘두바이코스, 몰디브코스, 터키코스’가 있었다. 나는 ‘몰디브코스’를 선택했다. 총 1만 5000쪽을 읽어야 하는 코스인데, ‘몰디브’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나는 몰디브에 도착한 기분으로 완주자 인증서와 대출권수가 6권으로 늘어나는 특전을 받았다.

오래 달리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힘들어도 참고 조금만 더 버티고 버티면 어느 순간 기쁨이 샘솟는다는 그 경지. 힘들게 달리고도 달린 것을 잃지 않으려면 그 경지에 도달해야 하고 도달해 본 사람만이 다시 달린다. 책을 읽고도 책을 잃지 않으려면 마라톤 주자처럼 읽어야 하겠는데, ‘리더스 하이(Readers’ high)’에 도달하는 데 읽은 내용을 적는 것이 읽은 책을 잃지 않고 다시 읽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독서마라톤 주자로 ‘리더스 하이’를 향해 계속 읽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그 때부터 ‘독서발자국 공책’을 만들어 기록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매년 마라톤 완주자로서 나에게 주는 인증서는 바로 이 공책이다.

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책에서 그대로 따온 문장이 나열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목차만 그대로 옮겨놓은 경우도 있다. 한 단락이나 한 쪽을 필사하기도 하고 소설을 읽고는 독후감을 쓰기도 했다. 책 한 권을 그대로 필사하기도 했다. 올해는 야심차게 공책의 왼쪽에는 책에서 따온 글, 오른쪽에는 나에게서 나온 글로 양면을 채우고 싶었는데 내 공책은 왼쪽 발자국만 찍힌 짝발로 균형을 못 잡고 있다.

그래도 이 공책 덕분에 올해 학교에서 실시한 독서마라톤 행사에 반 학생들과 참가해서 목표달성 상금을 받았다. 학교에 제출할 양식에는 책 제목과 읽은 날짜와 함께 한 줄 감상평만 적어도 돼서 그 동안 써 놓은 공책을 보며 간략하게 적을 수 있었다.

“얘들아, 그래도 책 읽어서 받은 상금이니까 우리 읽고 싶은 책을 사는 게 어떨까?” “선생님, 책은 못 먹어요!” 무척 단호하다. “어떻게 입으로만 먹고 사니? 눈으로도 먹고, 귀로도 먹고 그런 거지!” 나도 질 수 없다. 이 상금은 내가 ‘리더스 하이’를 만끽할 밑천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하는데 평생이라는 코스는 너무 막막하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여러 코스를 만들어 두고 때마다 ‘러너스 하이’를 향해 달려 볼까. 한 권, 열 권, 오십 권이라는 코스를 달리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리더스 하이’를 만끽해 볼까. 도달해 본 사람은 계속 달리거나 계속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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