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정치·교육부 기자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이면, 커다란 선물꾸러미를 짊어진 채 울지 않는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기다리며 한껏 들떠있었다. 울지 않으면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에 눈물을 보이지 않으며 친구들과 싸우지도 않았다.

20여 년을 훌쩍 넘긴 지금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젠 이 모든 것들에 별 감흥이 없어졌다. 비단 나의 마음 속 설렘만 없어졌으랴.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확연하게 달라졌다.

‘딸랑딸랑-’ 길을 걸으면 어디선가 들려오던 따뜻하고 반가운 구세군의 종소리도 그들의 노고가 무색하게 점점 묻히고 있고, 길거리를 수놓는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 전구와 트리, 커다란 산타 인형도 일부 시가지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잊히는 것이 또 한 가지 있어 안타깝다. 매년 연말이면 학교에서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이 바로 그것이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겠지만 크리스마스 실로 마련된 기금은 취약계층 결핵발견 및 지원, 학생 결핵환자 지원, 결핵균 검사 및 연구, 저개발국 지원 및 대국민 홍보사업 등 결핵환자들을 돕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이런 크리스마스 실 모금 운동은 우리나라에선 지난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던 크리스마스 실의 그 따듯하고 감동적인 의미가 무색해졌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 기대하곤 했었지만, 이젠 학교에서도 불편한 존재가 돼버렸으니 말이다.

지난해 연말 크리스마스 실에 대해 취재를 한 적이 있다. 낡고 허름한 대한결핵협회 대전세종충남지부의 외관에 혹시나 취재 장소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닌가 하며 당황스러워 했다. 내부 역시 다를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크리스마스 실은 구입이 아닌 ‘기부’입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던 관계자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를 외면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어릴 적 선생님이 실을 한 손에 들고 무엇인지 알려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높아진 결핵 완치율 때문일까, 우리의 관심이 점차 희미해져서일까. 어느 이유에서든 우리 사회의 아쉬운 단면에 대한 답답함을 해소할 순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결핵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이 많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6년 결핵으로 인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이들은 2186명이며 2017년 기준 국내(신고) 결핵환자는 3만 6044명이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들을 따뜻함으로 포용하는 크리스마스.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신나는 캐럴의 뒤편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보살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동전 한 닢 크기의 작은 실이 가져오는 커다랗고 긍정적인 변화가 우리 사회에서 언젠간 다시 만연할 것이라고 감히 기대해본다.

kjh0110@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