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장빈은 왕복도가 써 준 서장을 받아 갈무리하고 진원달의 두 아들을 따라 가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괴도들에게 시달려 고단한 몸이라 일행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늦잠이 든 장빈일행은 숲속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리고 왕복도가 베풀어 준 아침상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진원달의 두 아들이 서둘러 떠나자고 재촉했다. 장빈은 왕복도와 헤어지며 예의를 다하여 감사의 말을 전하기를

“대인의 은혜는 넘치는 광영이었습니다. 이제 진원달 어른을 찾아가 뵙고 그 후 일이 잘 풀려서 자리를 잡게 되면 서장을 보내어 오늘 우리에게 베푼 은공을 반드시 갚겠습니다.”

왕복도는 장빈의 횡설수설하는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저 우물쭈물하며 겸사의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길을 재촉하여 중화 무렵에 장빈일행은 진원달의 장원에 당도하였다. 먼저 집안으로 들어간 두 아들이 되돌아 나와서 말하기를

“아버지께서는 지금 밖에 나가셨습니다. 몇몇 친구들과 서봉루에 가신 모양입니다. 들어와서 기다리시면 제가 기별을 넣어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조개는 급상과 석늑의 행방을 몰라 마음이 조급해서 말하기를

“서봉루란 데가 어딘지 가르쳐 주시면 우리들이 직접 찾아가 뵙겠습니다.”

조개의 말에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여기서 서봉루는 상당히 멀어요. 오늘 해가 지기 전에는 못갑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깊은 계곡에서 정상을 거의 다 올라가야 있습니다.”

“그렇군 그래. 설령 저 산의 정상이라 해도 여기서 기다리고 시간을 축내는 것보다 우리가 발로 움직여서 찾아가는 것이 빨리 진 어른을 뵐 수 있을 것이오.”

장빈이 조개의 조급한 마음을 챙기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모든 일행이 찬동하여 장빈일행은 청년이 일러준 대로 서봉루를 찾아 길을 떠났다. 눈 안에 들어온 산을 부지런히 찾아가 계곡어귀에 다다르니 별천지가 나타났다.

- 서봉루의 풍운아

서봉루를 찾아가는 오솔길은 교목과 각종 기화요초들로 빽빽하게 어우러져서 초목의 바다와 같았다. 숲속에 묻혀 있는 계곡 속으로 흐르는 물은 명경지수와 같았다. 맑디맑은 청정수는 밑바닥 자갈 하나하나가 다 드러났다. 개울을 따라 한 가닥 오솔길이 숲속으로 구불구불 살아있는 뱀처럼 나타났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 각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윽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범나비도 간간이 날아다녔다.

‘선경이 이렇게 꾸며진 세상일까? 꾸미다니…. 말도 안 돼. 자연 그대로인데…. 아니야, 인간의 손으로는 빚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어느 신의 손으로 이리도 절묘하게 꾸며진 것일까?’

장빈은 그렇게 생각했다. 해가 저물 무렵 장빈일행은 겨우 서봉루에 당도하였다. 바라보니 산마루에서 계곡을 굽어보며 우람한 정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뒤로 몇 간의 모옥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다.

‘아아! 아름다울 손 서봉루여! 내가 여기 왔노라! 나 장빈이 푸른 꿈을 품고 여기 찾아 왔노라.’

장빈은 입속으로 그렇게 주절거리다가 그만 정신을 차리고 서봉루를 우러러 보았다. 가물거리는 등불 옆에 한 사람이 탁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머리에 윤건을 쓰고 학창의를 입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수려한 얼굴에는 긴 수염이 품위를 더하고 있었다. 그 용모가 마치 세속을 벗어나 학을 벗 삼아 살고 있는 신선과 같았다. 갑자기 동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 인기척이 있구나. 혹시 귀한 손님이 왔는지 모르니 어서 내려가 맞이하여라.”

동자가 대답을 짧게 하고 정자 아래로 내려와 보니 장빈일행이 서 있었다. 동자는 이들 빈객을 확인하고 위로 올라가 주인에게 아뢰기를

“몸집이 큰 손님이 여러분 오셨습니다.”

“어서 방안으로 모시어 드려라.”

장빈일행은 동자의 안내를 받아 모옥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정자에서 내려온 주인은 방안으로 들어와 장빈일행을 맞이하였다. 서로 정중하게 예법을 좇아 인사를 마치고 장빈이 왕복도의 소개로 어려운 부탁을 드릴 일이 있어 찾아 왔다고 의중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진원달이 장빈의 말을 받아 말하기를

“나는 세속의 풍진을 피하여 산야에 묻혀 사는 촌부외다. 도적의 무리가 설사 의리가 있다한들 어찌 나를 상대로 삼고 살겠습니까. 도적들은 아마도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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