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부착 규정놓고 갈등 번져
대학당국 “홍보게시물 효율 관리”
학생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일뿐”

한 때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던 대자보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최근 대학가에서 대자보 비방과 훼손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다 대학마다 홍보게시물의 사전 승인과 허가를 학칙으로 규정해 둔 탓에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는 학생들의 불만이 팽배해지는 양상이다.

대자보는 대학이 교육의 장이면서 사회 현안에 대한 토론의 장임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지만 아직까지 대자보가 가진 의견 개진, 접근성, 소통, 여론 응집력 등의 위력은 여전해서다.

하지만 요즘 대자보를 놓고 대학가에선 자못 심상찮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전국 대학가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가 나붙어 한국 학생들과 중국 유학생이 충돌하는가 하면 동덕여대에선 교수·강사진의 성차별 발언 규탄 대자보를 놓고 학교 측의 사전 승인을 향한 반발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일부 대학가에 홍콩 시위 대자보가 게시돼 논란이 일었던 대전도 대자보 사전 승인은 이미 오랜 관행이다. 대전지역 주요 4년제 대학 다수가 홍보게시물을 게시할 경우 학칙으로 학교 관계자 승인을 규정하고 있다. 대전 A 대학 관계자는 “홍보게시물의 효율적인 관리,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규칙을 마련한 것”이라며 “규정 위반 홍보물은 지체 없이 회수 또는 철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학교 허가를 받는 게 사실상 사전 검열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다. 대전 B 대학에 재학 중인 김 모 씨는 “말이 좋아 학교 환경을 위한 조치이지 대자보 승인 과정에서 누가, 어떤 내용을 썼는지 알려지는 것 아니냐”며 “만약 학내 부조리 등을 고발하는 내용일 때도 같은 규정을 적용하면 누가 대자보를 쓰려 하겠냐”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공적 이슈를 주제로 한 게시물에 대해 최소한의 원칙은 적용하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전 C 대학의 한 교수는 “제대로 된 의사 표시가 있어야 자유로운 토론이 있고 그 과정에서 효율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법”이라며 “대자보가 대학 내 공론의 장을 유지에 적잖은 역할을 하는 만큼 규정의 유연한 적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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