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별 뜻 없이 웃자고 하는 이야기는 많다. 그 중에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으니 “지방방송 끄세요.”이다. 여럿이 회합을 진행하는 도중 진행자에 집중하지 않고, 각자의 소리를 낼 때 이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잘 안다. 진행자(중앙방송) 말에 집중하고, 개별 발언(지방방송)을 자중해 달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란 걸 잘 안다. 누구도 이 말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이 말이 몸서리쳐지게 싫다. 솜털이 쭈뼛쭈뼛 일어설 만큼 그 말이 싫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지방을 무시하고 지방을 하찮게 보는지가 드러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방 아닌 곳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모든 지역은 지방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지방을 중앙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중앙이라 함은 서울을 지칭한다. 서울도 하나의 지방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을 중앙이라 하여 마음 한 구석에 받들어 모시는 면이 있다. 그러면서 지방을 천대하고 얕잡아 생각한다. 바로 그 점이 문제이다. 지방을 천대하는 그 의식이 문제이다.

그래서 지방대학을 무시하고, 지방신문을 무시하고, 지방방송을 무시하고, 지방공무원을 무시하고, 지방병원을 무시한다. ‘지방’이라는 말만 앞에 붙으면 뭔가 열등하고 하위인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중앙이란 말을 앞에 붙이면 뭔가 우등하고 상위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놀라운 것은 정작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지방인이면서 스스로 지방을 열등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학대란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쓰는 표현인가보다.

이런 의식을 갖고 있어서인지 어느 장소에서든 누군가 “지방방송 끄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순간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솟구친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진행자 말에 집중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좋으련만 왜 굳이 지방방송이란 표현을 써가며 지방을 비하하는 듯한 표현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서울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서울에 가서 살 것이지 왜 지방에 살면서 지방을 비하한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헌법은 모든 국민의 ‘거주의 자유’를 보장돼 있으니 원하는 곳에 살면 된다. 자신이 사는 고장에 대해 자긍심을 갖지는 못할망정 스스로 비하하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단 말인가.

흔히들 ‘지방’이란 표현의 상대적 개념으로 ‘중앙’이란 표현을 쓴다. 중앙이란 그냥 ‘가운데’란 뜻이다. 그럼 그 가운데란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지리적으로 가운데란 말인가 아니면 기능적으로 가운데란 말인가. 아마도 기능적으로 중심이란 의미로 중앙이란 표현을 쓰는 것 같다. 그 또한 말이 안 된다. 뭐가 중심이고 뭐가 변두리고 가장자리란 말인가. 난 개인적으로 ‘중앙’이란 표현에도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중앙과 지방을 양분시키고자 하는 개념은 상하 또는 우열의 개념을 조작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난 지방에 살지만 결코 내가 거주하는 지역으로 인해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서울에 인재가 많고, 돈과 권력도 몰려있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서울에 거주하는 인재들도 따지고 보면 모두 각 지역에서 올라간 사람들이다. 돈과 권력도 각 지역에서 올려 보낸 것이지 결코 서울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다.

각 지역의 출혈을 모아 만든 도시가 서울이고, 지금도 그 과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중앙이니 지방이나 하는 말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서울을 중앙이라 부르며 우대하는 것은 봉건적 사고방식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지역에 어찌 상하우열의 개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을 바꾸자. 이제 “지방방송 끄세요”라는 따위의 자기폄하 발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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