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주 시인(한남대 초빙교수)

 

시도 사랑도 안 되는 날에는
친구야 금강 하구에 가 보아라
강물이 어떻게 모여 꿈틀대며 흘러왔는지를
푸른 멍이 들도록
제 몸에다 채찍 휘둘러
얼마나 힘겨운 노동과 학습 끝에
스스로 깊어졌는지를
내 쓸쓸한 친구야
금강 하구둑 저녁에 알게 되리
이쪽도 저쪽도 없이
와와 하나로 부둥켜안고
마침내 유장한 사내로 다시 태어나
서해 속으로 발목을 밀어 넣는 강물은
반역이 사랑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을
한꺼번에 보여줄 테니까
장항제련소 굴뚝 아래까지 따라온 산줄기를
물결로 어루만져 돌려보내고
허리에 옷자락을 당겨 감으며
성큼 강물은 떠나리라
시도 사랑도 안 되는 날에는
친구야 금강 하구에 가 보아라
해는 저물어가도 끝없이
영차영차 뒤이어 와 기쁜 바다가 되는 강물을
하루내 갈대로 서서 바라보아도 좋으리

항상 달력의 끝에 다다르면 많은 생각과 다짐이 강물처럼 바다처럼 몰려든다. 1월부터 12월까지 흘러오면서 우리는 다사다난했지만, 강물이 서해 속으로 발목을 밀어 넣듯 모두 희망찬 새해를 맞는다. 금강 물결이 하구에서 서해를 만나기 직전처럼 지금은 2020년 코앞이다. 강물이 바다가 되는 순간은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강물이 바다를 만나려고 어떻게 꿈틀대며 흘러왔는지, 힘겨운 노동과 학습으로 어떻게 깊어졌는지 우린 잘 알고 있다.

강줄기가 금강 하구에서 바다를 만나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기쁨과 희망. 강물이 이쪽저쪽 구분 없이 하나로 부둥켜안고 힘차게 마지막까지 흘러가는 모습에서 강렬한 힘을 본다. 외롭고 쓸쓸한 날에는 금강 하구에 가서 힘을 느껴야 한다. 간혹 자연에서 위로 받고 치유 받는 경우가 있다. 효과만점이다. 외롭고 쓸쓸한 그런 날에는 모두 내려놓고 자연으로 달려가자. 다시 영차영차 살아갈 힘을 얻게 될 테니까. 당신도 꼭 그러할 테니까.

성은주 <시인·한남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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