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대전새미래초 교사

 한 해가 저물어 갈 때면 지난날이 그리워진다. 돌이켜 보면 우쭐대는 마음보다는 겸손함이 더해지고 숙연해진다. 학교생활을 오래 하면 그간 함께 했던 아이들이 다시금 생각날 때가 많다. 어떤 기억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고, 어떤 건 얼굴이 확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운 순간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그로부터 전화가 온 건 10여 년 전쯤이다. 그는 나에게 대뜸 인디언 공주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인디언 공주? 그래, 난 그 애를 그렇게 불렀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쌍꺼풀진 커다란 눈과 긴 속눈썹…. 인형처럼 예쁜 그 아이가 친구를 찾아 우리 반으로 놀러 올 때면 난 그렇게 부르곤 했다. 그 아이는 인디언 공주라는 별명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부를 때면 부끄러워하면서도 생글거리며 웃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그때도 지금처럼 가물거렸지만 웃음 띤 환한 얼굴과 내가 불렀던 인디언 공주는 아주 선명하게 기억났다.

인디언 공주는 내가 지방의 작은 도시에 첫 발령을 받고 얼마 안 있어 옮긴 학교에서 만났다. 옆 반인 그 아이는 내가 담당하던 반에 친한 친구가 많았는지 쉬는 시간이면 자주 들렀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때는 나도 피 끓는 청춘인지라 12살 여자아이들의 수다에 쉽게 빠져들어 곧잘 함께했다. 그 당시 내가 머문 학교는 엄청 과밀이라서 2학기에 학교가 분리됐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나뉘어 옮겨갔다. 나는 새로 개교한 학교로 이동했고, 그 애는 기존의 학교에 남게 되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이동한 학교에서도 1년 남짓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 있는 이곳으로 오면서 그 도시를 떠나왔다. 떠나온 거리만큼 그곳의 기억들과도 멀어졌다.

그 아이는 어느덧 대학생이 됐고, 내가 있는 곳과 가까운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한다고 했다. 우린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반가워했고 만나기로 약속했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약속이 어그러진 표면적인 이유는 좋지 않은 날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잘못이라고 느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난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여유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상태였다. 아쉽다고 하면서도 약속이 깨진 것이 내심 싫지 않았으니까. 그런 내 속마음을 눈치 챘는지 그녀는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나중에 내 쪽에서 다시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런 뒤로 인디언 공주를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 한구석이 싸해졌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것도 아니고 내 반인 적도 없었지만, 인디언 공주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교감을 나눴다고 여겨서 나를 찾았을 텐데…. 난 또 한동안 우울했다. 지금 다시 만나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처지로 세상살이의 고단함도 툴툴대며 나눌 수 있을 텐데. 그 옛날 우리 교실로 찾아와 수다 떨던 그때보다 더 잘 통할지도 모르는데, 해맑게 웃던 나의 인디언 공주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혹시 그때 선생님의 못난 마음 때문에 상처받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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