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유성초 교사

며칠 전 초등학교 신입생 입학 설명회가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입학설명회장을 둘러보는 아이들을 보니 새삼 우리 반 아이들과의 1년 생활이 떠오른다. 예전엔 1학년 담임이 큰 부담이 없었는데, 요즘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글도 잘 모르고, 안 그래도 힘든 생활지도에 더해 엄마처럼 돌봐주면서 학부모들과 계속해서 소통해야 하는 일을 하는 탓에 대체로 피하고 싶어 한다.

이런 이유로 학교에선 경험 많은 선생님이나 학교를 옮겨서 새로 부임해 온 교사들이 1학년 담임을 맡게 되는 일이 많다. 나는 노련한 선생님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직 생활이 20년은 넘었으니 경험이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고 새로 학교를 옮겨서 기득권을 주장할 수도 없으니 어쩌면 1학년을 맡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1학년을 맡게 되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건대, 우리 반 꼬맹이 녀석들이 무척 마음에 든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말해볼까? 우리 반에서 가장 느린 A가 그날도 어김없이 느릿느릿 책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으레 그래온지라 하교 인사를 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것을 알기에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잠시 후 A가 내 앞으로 오더니 캔커피 하나를 내밀며 선생님 드리려고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1학년 학생이 할 만한 행동은 아닌 것 같아서 A를 하교시키자마자 A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어머, 커피를 가져간 줄 몰랐어요. 전에는 선생님 좋다는 얘기를 했는데 요즘은 선생님이 힘들어 보인다고 했거든요. 아마 어제 아빠랑 편의점 갔을 때 샀나 봐요.’ 아, A가 나에게 이렇게 관심이 많았구나. 그 날 오후 피로가 싹 가셨다.

어떤 날엔 급식 시간에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B가 울고 있었다. 평소 1대 10으로 맞서도 울기는커녕 씩씩하게 대적할 아이였기에 깜짝 놀라 물으니 맞은 편에 앉은 친구가 자기에게 ‘울짱’을 안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울짱’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너를 인정한다는 의미로 자기들이 정한 말이라고 했다. 아, 그렇다면 선생님이 10개 줄게. 그러자 근처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나도 하나 줄게’, ‘난 3개’ 이 말을 들은 B는 씩 웃으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귀여운 녀석들 같으니라고. 입학식 이후로 하루도 쉬운 날은 없었지만 성장하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기특하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한글을 배워 일주일에 한 번씩 쪽지를 써 오는 아이, 교무실이 어딘지도 모르던 아이들이 심부름을 할 때 등 하루에도 몇 번씩 흐뭇하다.

1학년을 여러 해 맡았던 친한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힘든 1학년을 여러 번 맡아 할 수 있는 비결이 뭐야?’라는 질문에 ‘그게… 1학기는 너무 힘든데, 2학기 되면 너무 이뻐. 그래서 1학기를 잊고 다시 1학년을 하겠다고 하지. 1학기 때 다시 후회한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래, 이런 거였군. 지금 아이들을 보며 나는 또 다시 1학년 담임을 하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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