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어린이날이면 성심당 단팥빵이 항상 커다란 선물봉지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때 빵은 성심당만 만드는 줄 알았습니다. 호수돈여고에 다니고 나서는 성심당 빵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먹었습니다. 원도심을 떠난 후에는 아주 가끔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잊혀질 때쯤 성심당이 유명해졌습니다. 외지에 갈 때마다 대전에서 왔다고 하면 성심당 얘기를 상대가 먼저 꺼냈습니다. 그 때마다 나는 그거 진짜 맛있다고 말합니다. 보통 익숙하면 그걸 뭘 먹겠다고 대전을 오냐고 반응하는 법이죠.

그러나 성심당은 토박이에게도 맛좋은 곳입니다. 1·4후퇴때 메러디스비토리호에 앉아 있던 1만 4000명 중 성심당 창업주 임길순과 아내 그리고 네 딸이 있었습니다. 순번이 안 돼 그 배에 못탈 사정이었는데 천주님을 의지하며 나무십자가와 흰 천막을 펼쳐두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적처럼 배에 올라탔고 여기서 살아나가면 이제 나 혼자 살지는 않는다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 거제도에 도착하게 됩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 서울로 가보자 생각하고 기차에 올랐는데 기차가 고장나서 대전에서 서 버렸답니다.

그 길로 내려서서 대흥동성당을 찾아갔더니 신부님이 두 포대 밀가루를 내밀며 당분간이라도 끼니를 챙기라 했답니다. 수제비를 떠먹을까 하다가 풀빵을 만들어 팔기로 하고 막걸리를 발효해서 효모 만들기에 성공합니다. 그 날부터 풀빵을 만들어 팔았는데 300개를 만들면 100개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줬습니다. 메러디스빅토리호에 기적적으로 오르는 순간 먹은 마음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2년이 조금 지나 빵집은 건물에 들어앉게 됐고 월세였지만 수익도 늘었고 기부도 늘어났습니다. 성심당은 결코 전날 만든 빵을 팔지 않습니다. 모두 기부하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예쁘지만 언제나 신선한 빵이라는 신뢰가 값지게 쌓여있습니다.

성심당은 똘똘하지 않습니다. 우직합니다. 한참 가게가 번성할 때 중구 대흥동 153번지로 이사를 갑니다. 이유는 그 빈 땅에 서있는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를 자식에게 들려주겠다는 창업주의 고집 때문이었습니다. 빈 땅에 교회와 주유소와 빵집이라니 재미난 조합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대전의 핫 플레이스로 발돋움하게 되니 안목이 남다른 창업주였습니다.

성심당 본점에는 수도꼭지가 하나 있습니다.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문 옆의 수도입니다. 성심당 골목에 촘촘히 붙어있는 포장마차들이 물을 길어다 쓰는 게 맘 아파서 맘껏 쓰라고 빼 놓은 수도였습니다. 심지어 값 없이 쓰는 수도였습니다. 성심당의 온 마음을 수도꼭지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심당 분점이 여러 곳입니다. 그렇다고 체인점은 아닙니다. 제가 그 중 좋아하는 곳은 성심당 옛맛 솜씨입니다. 1960년대 강경의 어느 점방같은 인테리어는 내 어릴적에 익숙히 보던 조합들입니다. 안에 들어서면 센베이, 만주, 유과, 팥빙수, 약과등 옛 정서 물신한 먹거리를 팝니다. 소화력이 약한 제가 딱 싫어하는 종목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철철 묻어나는 그 공간에 고즈넉히 앉아 유자몽을 시켜 먹자면 6살 옥이로 돌아갑니다. 나는 못난이 인형을 똑 닮았더랬습니다. 참고로 나는 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