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사활 걸린 4월 15일
냉랭한 유권자, 그들의 선택은?

혈세를 대형 건설사업보다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데 먼저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모 씨가 작성한 ‘정부와 정치인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 중 일부를 캡처한 사진.

설 연휴를 지나면서 제21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의 카운트다운 앞자리가 ‘7’로 바뀌었다. 설 밥상머리 민심을 잡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 여야는 이제 7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 대비해 유권자들에게 선보일 상품, 즉 후보 공천과 주도권 선점을 위한 첨예한 신경전에 돌입했다. ▶관련기사 3·4·7면

이번 설에도 귀성객이 오간 대전역 광장은 북적였다. 그런데 철도 이용객 못지않게 이들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려는 무리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새해를 여는 민족의 큰 명절인 만큼 밝은 얼굴로 귀성객을 맞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속내는 달랐다.

‘건전하고 안전한 명절을 보내자’라는 계도성 홍보물을 나눠주는 관변단체, 잘못된 대전시정을 바로잡자는 시민단체(하수처리장 민영화 저지 관련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인 모집),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외치며 전도 활동을 하는 종교인,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철도노조의 주장을 담은 플래카드 등이 혼재돼 있는 광장 한가운데 그들도 어김없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70여 일 뒤 국민의 심판대에 서야 할 사람들 말이다. 미소 띤 얼굴로 귀성객을 환대하며 즐거운 설 명절이 되길 기원한 여야 정치인들. 하지만 순간순간 그들의 얼굴에선 왠지 모를 불안감과 초조감이 엿보였다. 동상이몽(同床異夢) 속에 자신들의 승리를 염원하면서도 실제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 흥분과 긴장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대전시당은 설을 맞아 4·15 총선에 대비한 민심 잡기 경쟁에 나섰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정의당, 바른미래당 대전시당의 귀성객 맞이 모습. 각 당 제공 사진.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광장을 오가는 유권자들의 표정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했다. “언제나 국민 곁에 있겠습니다”, “새로운 국회를 만들겠습니다”라며 ‘민생’과 ‘희망’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구애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때만 되면 머리를 조아리는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속고 싶지 않다는 듯 유권자들의 반응을 냉랭했다.

50대 자영업자 구 모 씨는 “정치꾼들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국회의원 선거가 뭔 대수냐. 선거 치르면 뭐가 달라지나”라고 반문했고, 충남 천안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한다는 박 모 씨는 “명절이 됐지만 즐겁지 않다. 올 한 해를 또 어떻게 넘겨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라며 씁쓸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학생 딸과 함께 역을 찾은 주부 강 모 씨는 “보수, 진보로 나뉘어 우리나라가 심하게 갈라지는 거 같아 걱정스럽다. 가족끼리 모여서도 정치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 언쟁이 벌어지곤 해 선거 얘기를 하기가 겁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한층 복잡해진 선거제도, 선거 연령 하향 조정(만 19→18세) 등이 변수로 작용할 21대 총선에서 과연 민심은 ‘국정 안정론’과 ’정권 심판론‘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가운데, 정치권의 시계는 째깍째깍 사활(死活)과 명운(命運)이 걸린 4월 15일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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