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

 

지난해 여름 좋은 모처럼 좋은 일을 한 기억이 있다. 필자는 서울용산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동문회 단체 대화방에서 1년 선배인 목사님이 주변에 어려운 지인이 있다고 도와달라는 공지를 올린 게 시작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봄을 지나 더운 여름이 다가오는 5~6월은 마스크 시장에서는 불경기를 알리는 시점인데 재고가 너무 쌓여 지인이 경영난에 처했다는 얘기였다. 공장 출고가격 400~500원 정도인 KF94 마스크를 200원에 단체 구매해 주는 게 어떠냐고 도움을 요청해 왔다. 너무도 딱한 마음에 1000개였던가, 2000개였던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2박스를 구매해 서울 본가에 하나 보내고 한 박스는 집에 두고 사용하기로 했다. 나이든 노인 2명만 사는 집에 이게 도대체 뭐냐는 아버지 말씀에 좋은 일 하는 것이니 두고두고 주변 분들 나눠 주라고 했다. 아버지께서 아무 말씀 안 하시긴 했지만 많이 당황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며칠 전에 아버지께서 지인들께 구하기 힘든 마스크를 선물하자 다들 고마워했고 사연을 들으신 분들이 역시 세상은 순리대로 돌아간다는 의견에 공감하셨다고 한다. 지금 그 마스크 덕에 필자도 주변에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오늘 주제는 필자 자랑이 아니다. 실은 이런 바이러스 혹은 질병의 발생이 국제적으로 널리 퍼지는 데 너무도 짧은 시간이 걸린 부분에 대한 것, 그에 따른 각종 국제행사의 취소에 대한 부분이다. 예전에 ‘12몽키스’라는 영화 내용이 이번 바이러스가 퍼지는 스토리와 매우 유사하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모터쇼만큼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없다. 화려한 조명과 다양한 컨셉카의 소개는 자동차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슴 설레게 하는 무대다. 그런데 이런 국제행사가 앞으로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현재 다양한 국제행사가 취소되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한번 가슴을 쓸어내린 사건이 쉽게 잊혀질 리 없다. 필자도 앞으로 마스크는 반드시 늘 착용하고 다녀야겠다고 결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터쇼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동차가 탄생한 19세기 말은 명확한 기술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많은 회사들이 처음 접하는 첨단기계분야에 뛰어들다 보니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고 정보를 교류할 무대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1897년 독일자동차협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전시회(Auto Ausstellung)를, 이듬해 파리에선 자동차전시회(Salon de l'automibiles)가 열렸다. 미국에서는 자동차딜러협회에서 자동차전시회(Auto Show)를 개최해 현재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와 파리 오토살롱 그리고 디트로이트오토쇼가 시작됐다.

아시아에서는 1954년 전일본자동차쇼로 출발해 1964년 올림픽개최와 함께 이름을 바꾼 도쿄 모터쇼가 거의 유일했다. 1985년 상하이를 시작으로 베이징 등 중국에서 모터쇼가 열리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는 1995년 서울모터쇼를 처음 열고 그 후 서울모터쇼가 세계자동차제작자연합회(OICA)의 공인을 받은 국제모터쇼로 성장했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테크니컬쇼의 성격이었고 파리 오토 살롱은 시판차 중심의 모터쇼, 미국의 디트로이트 오토쇼는 명칭이 북미국제오토쇼로 바뀌었지만 지역 모터쇼 수준으로 안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용차 박람회인 ‘현대 트럭&버스 메가페어(Hyundai Truck&Bus Mega Fair)’가 개최돼 무공해 친환경 전기버스의 소개와 200여 대의 상용차 전시가 테마파크 형식으로 진행돼 왔다. 모터쇼를 통해 소비자를 설득할 필요성을 못 느끼던 분야도 서서히 변화해 오고 있었다. 기존의 개념으로는 모터쇼는 단순한 볼거리의 이벤트가 아니었다. 소비자입장에서는 다양한 자동차 정보를 한 자리에서 얻을 수 있고 이는 곧 구매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있었다.

따라서 자동차회사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기술과 제품을 과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컨셉트카 등을 통해 가까운 미래의 기술을 미리 보여주고 새로운 트렌드를 통해 소비자들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기 위한 것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대중매체가 발달하고 최근 SNS의 영향력이 크게 높아지면서 자동차에 대한 정보나 기술력 등을 굳이 한 무대에 모아 보여주는 모터쇼의 효과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와 더불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그 개념 변화에 일조한 것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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