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주(시인·한남대 초빙교수)

성은주 시인(한남대 초빙교수)

미루나무 그림자가 노을 한 자락 걸치고 있는
금강 변에 서면
품고 온 슬픔이 없는데도 가슴에서 피가 난다.

착한 것도 죄가 되는가!

백제의 산들은 왜 모두 모난 데 없이 둥글기만 해서
적군의 발길 하나 막지 못한 것이냐.

나라 없는 백성들은 질경이처럼 짓밟혀서
꺾여도 꺾여도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다.

역사의 속살을 가리려고
바람은
투명한 수면에다 주름을 잡아놓는가.

짠한 눈물 몇 종지 스스로 씻어내며
세월의 골짜기를 흐르는 금강

강변에 불을 피우고
남은 슬픔 몇 단 불 속에 던져 넣는다.

물에도 감정이 있다면 그 물의 안부가 궁금하다. 누군가의 아픔을 지켜보면 같이 눈물이 나듯, 우리 역사의 아픔을 가장 많이 지켜본 금강 변에 서면 물결에 새겨진 슬픔이 어루만져진다. 때로는 세상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위로를 보내주겠지만, 금강은 우리가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다 알고 있기에 같이 자주 울어준다. 그래서 가슴에 피가 나는 금강은 백제의 산들을 토닥여 주며 도도히 흐른다.

백제의 산들은 모난 데 없이 둥글고 착해서 적군의 발길 하나 막지 못했다. 꺾이고 짓밟혀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알기에, 강한 의지와 생명력을 금강은 느꼈을 테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바로 그 자리에서 흐르고 있는 금강에서 짠한 눈물 몇 종지를 발견한다. 금강에는 백제의 피가 서려 있고, 백제의 눈물이 담겨 있다. 오랜 슬픔의 감정을 불 속에 던져 넣어서 태우는 까닭은 기쁨과 웃음이 가득한 새로운 희망의 단계로 나아가려는 열망 때문이다. <성은주 시인·한남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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