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입료 등 차포 떼면 월 200 남짓에 차라도 고장 나면 헛수고

화물연대 대전지부 GS리테일분회 조합원들이 운송료 15% 인상, 연비 조정, 번호판 사용료 폐지 및 수수료 인하 등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건용 기자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화물노동자인 A(55) 씨와 동료들이 외로운 투쟁에 나선 건 지난해 11월 21일. 더 이상 못 참겠다며 노조를 결성하고 부분파업을 벌인지 한 달 보름이 다 되간다. 하지만 교섭은 매번 교착상태다. 회사 측은 긍정적 검토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A 씨가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 시간은 오후 4시 30분쯤. 물량이 폭주하는 여름엔 1시간쯤 더 이르게 출근해야 한다. 5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공주시 우성면 월미농공단지는 입구부터 원색적인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로 가득하다.

“우리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운송료 인상하라”, “연비 조정하라”, “번호판 사용료 폐지하고 수수료 인하하라”, “명절 2일 휴무 보장하라” 등등 100여 개의 현수막과 피켓들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대전지부 CJ대한통운 공주사업장 조합원 110여 명의 비장함을 말해준다.

잠시 조합원들과 향후 대책을 논의한 A 씨는 곧바로 작업장으로 향했다. 먼저 2.5톤 냉동탑차의 시동을 켜고 예냉(豫冷)을 시작한다. 여름 같으면 집을 나설 때부터 예냉을 시작해야 하지만, 겨울엔 상차 전에 켜도 충분히 적정온도를 맞출 수 있다. 국내 굴지의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위탁배송 맡은 CJ대한통운과 마찰을 빚는 부분으로, ㎞수만으로 유류비를 지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요구다.

작업장은 20대가 넘는 차량에서 내뿜는 배기가스로 매캐하고 눈이 따가울 지경이다. 속도 울렁거린다. 대전의 7개 동지역 23개 편의점에 유제품을 배달하는 A씨는 1년 넘어 이력이 날만도 한데 늘 고통스럽다.

수십 명이 각자 배달할 물건을 싣느라 뒤엉키고, 작업 통로에 쌓인 유제박스에 치이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아차하다 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손수레에 대충 올려놓은 유제박스를 잘 못 건드렸다간 제품이 파손돼 30~40분을 허비해야 한다. 아귀가 잘 맞지 않는 유제박스도 늘 골칫거리다. 각 점포로 나갈 물건들도 제대로 실렸는지 살펴야 한다.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열악한 작업환경을 불평할 겨를도 없다. 점착시간(점포 도착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냉동창고와 냉장창고를 오가기를 수십 번, 대략 한 시간을 조금 넘겨 상차작업을 마무리했다. 물량이 폭주하는 여름엔 지금보다 갑절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A 씨는 오늘 계를 탔다는 생각이다. 상차 도크가 4~5개쯤 부족해 일찍 와서도 남들 빠져나갈 때까지 1~2시간을 기다려야하는 날도 있기 때문.

잠시 숨을 고른 A 씨는 이내 갈 길을 재촉해야 한다. 물건 파손을 우려해 빨리 달릴 수도 없다. 수박이나 포도 등 과일을 싣고 달리는 여름엔 더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호위반은 일상이 돼버렸다. 오늘 첫 점포 도착은 8시 반쯤. 대로변에 위치해 제품운반이 수월한 편이지만, 좁은 골목길이나 대학가나 유흥가 주변에 있는 편의점은 주차문제로 그야말로 전쟁이다. 30~40㎏이 넘는 유제박스 3~4개를 낑낑대며 40~50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곳도 있다. 팔과 무릎과 허리가 성할 일이 없다. 만성적인 통증은 물론 긴장성 두통까지 달고 산다. 몸이 아프고, 수시로 날라 오는 주차위반 딱지는 견딜 만하다. 운전자 또는 보행자들과의 실랑이는 때로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안기기 일쑤다. 하인정도로 취급하는 점주와의 마찰은 가슴을 후벼 판다. 이런 대접을 받아가며 일해야 하는지 비애감이 몰려온다.

마지막 점포까지 배송을 마친 시간은 대략 11시 10분. 부분파업을 시작하고 A 씨가 맡은 23개 점포 중 3개는 배달을 거부 중이다. 동료들도 각각 20개 점포씩만 배송하고 있다. 유제박스 회수 거부, 각 점포 인근 반경 400미터 이내에서 찍게 돼 있는 점착등록시스템 인증도 거부 중이다. 점착인증을 빼먹었거나, 각 점포의 불만사항 처리로 되돌아가 처리해야 했던 예전에 비하면 사고위험도 줄고 업무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불편하다. 생존권을 위해 싸운다지만, 점포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스럽다.
A 씨가 이렇게 열악한 작업환경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가며 한 달에 쥐는 돈은 305만 원. 그런데 지입료 21만 원(월대의 7%)과 번호판사용료 15만 원을 제하면 269만 원 남짓이다. 여기에 보험료와 타이어 및 엔진오일 등 차량유지관리비 등을 제하면 200여만 원이 고작이다.

차라도 고장 나면 한 달 고생이 헛수고로 돌아간다. 대부분이 새 차는 엄두가 안나 10년 안팎의 중고차로 운행하다보니 고장이 잣다. 차량 냉동기는 수시로 말썽이다. 수십~수백만 원을 꼬라박아야 하는 처지다. 차가 고장 나 일을 못나가니 것도 서러운데 하루 일당 10만 원에 4만~5만 원의 웃돈까지 얹어줘야 한다. 이러니 기본만 해서는 생활이 안 된다. 몸 부서지는 줄 모르고 탕 뛰기(추가배송)에 나서는 이유다. 추가배송을 마치면 새벽 3~4시 그야말로 녹초가 된다.

A 씨는 착잡하다. 아들 노릇,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은데 그 놈의 돈이 원수다. 친인척 애경사도 챙기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멀리하며 ‘개고생’한 대가가 이 건가하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배운 게 없고 가진 게 없어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내 처지는 낫다 싶다.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오늘도 A 씨는 운전대를 잡는다. 내일은 좀 더 좋아지겠지.

공주=이건용 기자 lgy@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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