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정치시즌이 되면 참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정치1번지’라는 수식어이다. 어느 선거구를 국내 정치 1번지라고도 하고, 어느 선거구를 특정 문화권 정치 1번지라고도 한다. 예컨대 종로를 국내 정치 1번지라 하고, 어느 지역을 충청 정치 1번지, 호남 정치 1번지, 영남 정치 1번지 등으로 표현한다. 또 광역시·도의 특정 지역 한두 곳을 정치 1번지라고 칭하기도 한다. 신도시가 들어서면 신 정치 1번지라고 한다. 대전을 예로 들면 중구 선거구를 정치 1번지라고 칭하고, 서구을 선거구를 신 정치 1번지라고 일컫는다. 1번지는 어느 분야에서 으뜸가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정치판에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 1번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대개 서울은 종로선거구를 정치 1번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의도적으로 여야가 종로에 거물급들을 배치해 빅매치를 성사시켰다. 그러다 보니 종로선거구에서 총선의 승리를 거머쥔 선량들이 대선까지 줄달음쳐 고지를 밟는 일이 생겨났다. 그래서 ‘종로=정치 1번지’라는 공식은 더욱 굳어졌다. 따지고 보면 그곳에 거물들이 즐비하고 그들의 빅매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 그곳을 정치 1번지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역으로 그곳을 정치 1번지라고 규정해 그곳으로 거물들을 불러모아 판을 벌여주니 그곳이 주목을 받게 되고, 1번지라는 수식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 1번지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방에서도 권역별 거점도시의 전통있는 도심 일대 선거구를 정치 1번지라고 칭한다. 대개는 주요 관공서가 밀집해있고, 오랜 상권이 형성돼 있는 곳이 각 지역의 1번지로 지목되는 곳이다. 그러다가 원도심이 노후화되고 기력이 쇠약해지면 신흥개발지가 생겨나고 그곳으로 관공서가 이전하고 그 일대에 새로운 상권이 생겨난다. 그러면 그 신흥 중심지를 신 정치 1번지라고 의미 부여를 한다. 그리고는 그곳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언론은 이곳을 집중 조명을 한다. 각 정당도 거기에 맞춰 판을 짠다. 그러나 지방의 경우, 굳이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정도의 빅매치가 성사되지는 않는다. 언론의 조명이 집중되니 주민들은 그저 상징성 있는 선거구 정도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는 중요한 선거구가 따로 있느냐는 것이다. 빅매치가 따로 있느냐는 것이다.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선거구가 어디 있으며, 중요하지 않은 후보가 어디 있는가. 유명세를 얻는 후보라고 하여 그가 반드시 민심을 대변하고, 주민들 곁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는 선량이 된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1번지 선거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이다. 모든 국민의 표심은 중요하고, 모든 선거구의 선거 결과 역시 중요하다. 민심을 대변하는 선량을 가려내는 선거에 거물급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정치 1번지라는 수식어도 인정할 수 없다.

해당 선거구에 아무런 연고도 없고, 평소 그곳 주민들의 실정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인물이 느닷없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선거에 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도 빅매치니, 정치 1번지 대결이니 하는 등의 엄청난 수식어를 붙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국회의원은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국민 대표성도 갖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 대표성도 동시에 갖는다. 해당 지역의 민심을 꼼꼼히 살필 수 있는 인물을 선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지도가 높은 인물을 거물급이라 하여 지역대표로 선호하는 현상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에 1번지란 따로 없다. 모두가 1번지이다. 어느 한 곳 중요하지 않은 선거구가 있으며, 어느 한 주권자의 표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역 선거구의 선후(先後)나 우열(優劣)이란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 모든 선거구가 정치 1번지이다. 내가 사는 곳이 바로 1번지이다. 정치시즌만 되면 아무 거리낌 없이 언론에서 들먹이는 ‘정치 1번지’라는 낡은 표현은 그만 사용해야 한다. 어느 선거구는 중요하고, 어느 선거구는 덜 중요하다는 생각은 구시대적이다. 여야도, 언론도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거듭 밝히지만 모든 선거구, 모든 표심은 중요하고 소중하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