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한층 드높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자본주의에 의한 부의 불평등은 정상적인 인간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는 내용에 많은 세계인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지난 20세기에 얻은 것은 물질이요, 잃은 것은 인간”이라고 현시대는 말한다. 재산 다툼으로 형제들은 서로 원수지간이 되고, 부모와 자식 사이조차 천륜이 파탄 나는 즐비한 사건이 우리 사회를 경악게 한다. 우리 선조들이 고유하게 지켜온 선비정신과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사회정의가 무너져 버렸다.

사람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과거를 뒤돌아보며 쉼 없이 반성하는 사람만이 밝은 미래를 맞이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지난날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우리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고려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단일왕조로서 민족적 자부심이 강했던 국가다. 원나라의 지배하에서 공민왕은 고려왕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원나라를 배격하며 친원 권문세족을 강력하게 척결했다. 그 결과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신흥사대부라는 인재들이 친원 권문세족들의 수구 반동정치의 극한 상황에서 조선왕조를 개창했다. 그리하여 우리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꽃피웠던 세종시대를 열었다.

그 후 조선왕조 중반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우리 민족의 역사적 위기를 맞았지만 탁월하고 용맹한 장수들과 전국 도처에서의 의병항쟁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아울러 ‘지봉유설’로 유명한 이수광을 비롯한 지식인들의 각성과 분발로 실학이 탄생해 영·정조시대의 조선 후기 중흥기를 이뤄냈다.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세도정치의 역사적 퇴행으로 또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20세기 초 일제의 국권침탈로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악랄한 식민통치가 36년이나 이어졌다. 특히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압살하기 위하여 ‘황국식민화’와 ‘일선동조론’을 강조하며 창씨개명까지 단행했는데 많은 사람이 거부하자 일제는 각 분야의 저명한 지식인들을 회유·협박해 수많은 친일 단체를 조직하고, 황국신민화 정책과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일에 앞장서게 했다.

안타깝게도 각 분야의 지식인들이 친일 앞잡이가 되고 말았다. 더구나 해방되기 직전 미국은 한반도를 38도선을 경계로 소련과 분할 점령할 것을 제의하고 동의를 얻어 해방되자마자 남한을 점령하고 즉각 미군정을 실시했다. 일제로부터 해방의 감격을 채 누리지 못하고 이 땅은 미국의 점령지로 바뀌고 만 것이다.

미군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국내에서 해방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조선건국준비위원회’마저 무시한 채 일제 강점기 총독부 관료와 경찰 등의 친일 인사들을 발탁해 미국이 원하는 대로 남한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이승만은 친일파 인사들을 대거 등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이용했다. 그럼에도 제헌 헌법 101조에 근거해 지난 1948년 9월 7일 ‘반민족 행위자 처벌법’이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

친일파 청산은 단순히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하는 차원을 넘어 일제 식민지시대의 굴절된 민족정기와 왜곡된 사회구조를 바로 세우고 역사의 정통성을 되찾기 위한 절실한 시대적 과업이다. 그러나 반민족행위자 처벌법의 공포와 함께 ‘반민족 행위 특별위원회’(약칭 반민특위)와 ‘특별재판부’를 구성해 반민족 행위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자 친일 세력들과 그들을 배후에서 비호한 이승만은 온갖 책동으로 방해했다. 마침내 1949년 6월 6일 친일 경찰의 반민특위사무실 습격으로 친일파청산을 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그 이후 친일 세력들은 그들만의 인맥을 단단히 하고, 친일 행적을 숨기기 위해 권력을 앞세워 핵폭탄만큼이나 무서운 반공이라는 무기로 독립운동지사와 민주열사들에게 온갖 만행을 서슴지 않고 저질러왔다. 또한 그들은 특권과 반칙으로 권력과 부를 대물림해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가 됐다. 그리고 외세를 배경으로 우익보수라 지칭하면서 아직 우리 사회에서 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국립 현충원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국가 유공자로 둔갑해 애국지사들 옆에 묻혀있는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이 펼쳐졌다.

오늘에 이르러 전 세계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자유·평등·평화의 보편적 가치기준에서 보수의 가면을 쓴 친일 잔재세력들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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