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부자 사유담(史遊談)]

​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이제는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우리 오빠는 장애가 있었습니다. 5살 지능에 간질과 베체트병, 그리고 정신질환을 앓았습니다. 체구가 크기로 유명한 집안에 오빠는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았습니다. 오빠는 하얀 얼굴에 짙은 쌍꺼풀을 가진 매우 호남형의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장애는 오빠를 그냥두지 않았지요. 40이 가까워질 때까지 아픈 아들 학교를 따라다니며 졸업을 시키고 자격증을 따게 한 부모님은 억척스러울 만큼 아들에게 헌신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나이가 들어갔습니다. 정신질환이 왔을 때는 행동이 과격해졌고 덩치 큰 남자를 부모님은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오빠는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장기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역 정신병원의 장기입원 수준은 기가 막혔습니다. 시설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받아주는 것만도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정신질환 장기입원 환자의 운명입니다. 가족들은 병원의 불친절함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차마 지적할 수도 없습니다.

오빠는 복합질환 환자라서 외과적인 부분은 외부의 병원에서 협진을 받아야 했습니다. 부모와 가장 늦게까지 살았던 저는 부모님의 역할을 함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은 제 일이 됐고 아기를 낳고 나서도 백일쟁이 딸을 데리고 아픈 오빠 병원치료를 맡아야 했습니다.

정신이 온전할 때는 괜찮은데 예민하거나 간질을 할 때는 엉엉 울면서 대처를 했었지요. 오빠는 허구헌날 입과 혀과 곪아 터졌습니다. 베체트병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류마티스내과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검진을 왔는데 오빠는 참 상태가 항상 달랐습니다. 때론 화를 내며 나를 밀치기도 하고 무섭다고 훌쩍훌쩍 울기도 했습니다. 오빠는 정말 시한폭탄 같았습니다. 혹시 대기 중에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차에서 대기하거나 산책을 하다가 시간에 맞춰 진료실에 가야했습니다. 대학병원 예약은 생각보다 지체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항상 아가를 안고 아픈 남자를 데려오는 내가 궁금하셨겠지요? 환자의 막내동생이라는걸 알고 나서는 선생님이 칭찬을 하십니다. 아무도 못 하는 일이라고. 그 앞에서 한참을 울었네요. 내가 힘든 일을 하고 있었구나. 이때 이후로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은 차에서 대기하는 저에게 전화로 상황을 알려줬습니다. 우리는 길게 기다리지 않고 차에서 대기하다가 바로 진료실로 달려가면 됐습니다.

편법 아닌 특혜였습니다. 그러다 오빠는 매우 위중한 상태가 됐습니다. 24시간을 버티지 못할 거라 했습니다. 가족들은 이번에는 그냥 보내주자고 독하게 맘을 먹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이니까요. 그러나 매번 오빠 손을 잡고 병원을 다닌 나는 또 달랐습니다. 나는 요양병원에 가서 앰뷸런스로 오빠를 데리고 종합병원으로 달렸습니다. 특별한 외과 진료시설이 없던 요양병원은 가래를 제거시킬 수 없었고 오빠는 정말 귀신같은 몰골로 사람이 보일 수 없는 형상으로 가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온통 쏟아내는 분비물의 악취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나는 그날을 삶에서 잊고 싶습니다. 오빠를 데리고 어느 종합병원을 갔으나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건양대병원으로 달렸습니다. 그날 오빠의 모습을 봤다면 그 어떤 병원도 받아주지 않았을 겁니다. 오빠는 급하게 기도를 확보하고 산소를 공급 받았습니다. 다시 찾은 중환자실의 오빠는 참 편안하고 깨끗하게 씻겨져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질병을 가진 오빠의 협진은 류마티스내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흔쾌히 해주셨고 오빠의 상태와 집안 상황까지 전달을 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오빠는 빠르게 안정세를 찾아갔습니다. 정신병 있는 환자를 쉽게 받아주지 않는 건 아시나요?

그 겨울은 넘겼지만 오빠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오빠의 몸에 어떤 균이 있었습니다. 바로 매독이었죠. 정신병동 장기입원환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종합병원에 치료받으려면 1인실에서 보호자가 함께 들어가서 간호해야 하는 정신병 환자에게 인권은 없습니다. 그 환자의 가족에게도 큰 부담입니다. 오빠가 떠나고 5년이 지나 대남병원 사태를 보면서 저 병원은 다를까 싶었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곳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문득 건양대병원 류마티스 내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대로 계시는군요. 그때 못한 감사를 전하며 떡 사들고 가겠다고 전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진심을 전하는 의료진 모두에게 감사하는 오늘입니다.

감사합니다. 정청일 교수님, 김효진 간호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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