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사랑하는 것/파워/더 해빙… 외 40권

▲ 사랑을 사랑하는 것 = 함정임 지음

기대주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함정임이 등단 30주년을 맞아 5년 만에 펴낸 아홉 번째 소설집이다.

유목민이나 집시를 떠올리게 하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들며 주의를 환기한다. 빅토르 시클롭스키의 ‘낯설게 하기’ 기법이 그대로 구현된 듯하다.

‘용인’, ‘영도’, ‘해운대’, ‘디트로이트’ 등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들이 각 단편 제목으로 쓰인 것은 익숙하고 친밀한 것들을 생경하게 다가오도록 하겠다는 의지처럼 읽힌다.

‘순간, 순간들’을 비롯해 모두 10편이 담겼다. 소설집 제목은 별도로 지었다.

함정임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을 통해 등단해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아주 사소한 중독’, ‘버스, 지나가다’, ‘네 마음의 푸른 눈’ 등을 펴냈다.

문학동네. 248쪽. 1만3500원.

▲ 파워 = 나오미 앨더만 지음, 정지현 옮김

여성이 주도권을 쥔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소설은 이런 일이 일어난 세상을 그린다.

어느 날 전 세계 10대 소녀들이 전기를 방출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성인 여성들에게도 이런 능력을 전수한다. 기존 성 역할이 붕괴하고 남성들이 쥔 권력은 여성에게 넘어간다.

여성 공화국이 생기고 ‘어머니 이브’가 이끄는 신흥 종교가 세계를 장악한다.

여기까지는 기존 페미니스트 소설과 비슷하지만, 작가 나오미 앨더만은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을 택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평화롭고 덜 폭력적이라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은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에서 절대 금기가 ‘진부함’이란 점에서 나온다. 여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각 분야에서 거대한 혼돈에 빠져든다.

2017년 베일리스 여성 문학상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배우 엠마 왓슨 등 리버럴 진영 인사들이 추천한 책이다.

아마존과 영국 출판계 등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드라마로 만들 예정이다. 

민음사. 428쪽. 1만5000원.

▲ 더 해빙(The Having) = 이서윤·홍주연 지음.

‘수저론’이 대세인 이 시대에 자신의 힘으로 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할까? 우리를 짓누르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행복한 부자로 살아가는 길은 뭘까?
저자는 물려받은 재산이나 뛰어난 학벌, 남다른 재능이 없어도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부와 행운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비결은 행운을 끌어들이는 힘인 ‘Having’이란다. 저자는 “Having은 이 순간 ‘가지고 있음’을 ‘충만하게’ 느끼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낭비나 과시적 소비와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고 들려준다.

자기계발 분야의 이 책은 지난해 미국 펭귄랜덤하우스에서 먼저 출간됐고,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등 21개국에서 판권 계약이 이뤄졌다. 한국 저자의 책이 국내 시장을 거치지 않고 해외 주요시장에서 먼저 출간된 것은 유례가 드문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의 해외 진출과 성공 비결로 ‘동서양의 장점을 융합한 콘텐츠의 힘’을 꼽는다. 부와 성공을 이루는 방법으로 동양적인 ‘마음가짐’과 ‘내면의 힘’을 제시했고, 여기에 서양의 실용적인 자기계발 메시지를 접목한 점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수오서재. 344쪽. 1만6000원.

▲ 제국의 아이돌 = 이혜진 지음.

‘조선의 이사도라 던컨’으로 불린 무용가 최승희, 중국에서 태어난 일본인 소녀 간판스타 리샹란(야마구치 요시코), ‘나치의 핀업 걸’로 회자된 레니 리펜슈탈, 할리우드의 ‘섹시 심벌’ 마를레네 디트리히. 20세기, 이른바 ‘제국의 시대’를 살아간 네 명의 여성 스타다.

이들 네 여성은 일본과 독일 제국주의에 내재된 유토피아에 대한 잠재적 환상을 기반으로 한 프로파간다를 수행함으로써 스타로서는 최고의 지위를 누렸으나 패전 이후 새롭게 재편된 국가질서에 따라 그 지위를 박탈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명대 교양대학 부교수인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들 은막의 스타가 어떻게 국가 이데올로기와 교착하면서 내셔널리즘 미학을 구성해갔는지, 그리고 전후 국제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이들에게 어떠한 급격한 위상 변화가 발생했는지 살펴본다.

책과함께. 336쪽. 2만원.

▲ 하버드 철학수업 = 윌리엄 제임스 지음. 이지은 옮김.

저자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오랫동안 철학과 심리학, 생리학을 가르쳤다. 이 책은 철학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을 위한 철학 개론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철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된 것들과 인간 정신의 문제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철학의 발전단계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유물론과 유심론의 논쟁, 헤겔의 변증법적 유심론,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등을 다루면서 인간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세계관과 인생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 답을 유추하게 한다.

실용주의자인 저자는 “실용주의는 명목론과 실제론, 경험주의와 이성주의, 유물론과 유심론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나무와열매. 328쪽. 1만6000원.

▲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 데이비드 콰먼 지음, 강병철 옮김.

미국의 저명한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가 감염병 전문가의 인터뷰와 강연, 연구 보고서 등을 토대로 세계 곳곳에서 창궐하는 인수공통 전염병의 실태를 파헤치고 대책을 모색한다.

지난 2017년 간행된 1판을 개정, 증보했다. 소아과 전문의 출신 과학·의학전문 번역가가 번역을 맡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메르스, 조류독감, 사스, 에볼라, 메르스, 나아가 한때 ‘죽음의 역병’으로 불린 에이즈는 모두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건너와 생기는 병, 즉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인간과 동물이 접촉하는 한 동물 병원체가 인간에게 건너오는 것은 항상 있었던 일이지만 현대에 들어 세계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인간이 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은 전에 없는 위협이 되고 있다.

사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지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도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책에 인용된 미국 피츠버그대학 바이러스학자 도널드 버크는 1997년 강연을 통해 향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로 코로나바이러스를 첫손으로 꼽았다.

저자는 중국 남부의 박쥐 동굴과 광둥성의 식용동물시장, 콩고 강변의 외딴 마을들, 중앙아프리카의 정글, 방글라데시 오지,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 등을 누비며 개성 넘치는 동물들과 무시무시한 병원체들이 사는 세계로 안내한다.

인수공통감염병은 완전히 정복할 수 없고 인간이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자연은 언제라도 다음번 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저자는 예상한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라는 것이 결론이다.

꿈꿀자유. 660쪽. 3만원.

▲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 곽재식 지음.

공학박사이며 SF소설과 과학 논픽션 등 분야를 넘나드는 저술 활동을 하는 저자가 세균의 과거, 현재, 미래와 세균과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책은 과거관·현재관·미래관·우주관 4개 관으로 이뤄진 박람회장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과거관에서는 세균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핵이 없는 생물은 어떻게 핵이 있는 생물로 진화했는지를 알아본다.

현재관에서는 황색포도상구균, 파상풍균, 탄저균 등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균뿐만 아니라 김치나 요구르트를 만드는 데 쓰이는 유산균과 같이 우리에게 유익한 균의 세계를 보여준다.

미래관에서는 실험동물 대신에 세균을 쓸 수 있을지, 세균이 바이러스나 곰팡이, 효모와 싸우는 방법을 우리가 어떻게 응용할지, 세균으로 환경 문제나 범죄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 등을 탐구한다.

우주관에서는 세균을 이용해 다른 행성에 사는 생물을 만들거나 인간이 우주에 갈 때 세균이 도움을 주는 방법 등을 찾아본다.

김영사. 380쪽. 1만6800원.

▲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 김영옥·메이·이지은·전희경 지음.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기획으로 아픈 몸들, 돌보는 몸들, 그 몸들이 서로 맺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엮었다. 이 단체는 나이와 나이 듦·질병·돌봄·노년·세대·시간·죽음 등을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문제화’하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의제화’할 것을 표방한다.

저자들은 병명과 상태는 다르지만, 모두가 한때, 그리고 지금도 ‘아픈 몸’으로 산다. 이들은 누구나 미래에는 ‘아픈 몸’, ‘돌보는 몸’이 될 수밖에 없기에 질병, 돌봄, 노년의 문제는 모두에게 간절한 주제라고 여긴다.

제목의 ‘새벽 세 시’는 아프거나 아픈 사람을 돌보게 됐을 때 자신의 몸이나 타자와의 관계, 사회활동의 변화를 가장 날카롭게 지각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책에 실린 여섯 편 글은 각자의 입장에서 ‘돌봄 위기’를 말한다. 그리고 늙은 사람,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일이 몽땅 여성들 몫이던 상황을 당연시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을 제기한다.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를 쓴 전희경은 “아무도 돌보지 않기를 권장하는 사회, 아무도 돌보지 않을수록 ‘이득’이 되는 사회는 망할 수밖에 없다”면서 “시민이기에 돌봄에 참여해야 할 책임을 공유하고, 그 공유된 책임의 시스템을 통해 비로소 돌보고 돌봄 받을 개인의 권리가 가능해진다”고 썼다.

봄날의책. 304쪽. 1만5000원.

▲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 = 마수취안 지음, 정주은·이서연·박소정 옮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못지않게 야비할 정도의 정치 기술과 권모술수를 기술한 측천무후 시대 ‘나직경(羅織經)’의 해설서다.

나직경은 측천무후의 신하 내준신이 지었다는 기록만 남았을 뿐 실제 책 내용은 전해 내려오지 않았으나 중국의 고전 전문가인 저자가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널리 알렸다.

책은 나직경을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로 번역하고 풀이했으며 당 태종부터 청나라 옹정제 치세까지 중국의 고사를 덧붙여 재구성했다.

권력을 다루는 법, 전략을 세우는 법, 간신을 찾아내는 법, 아랫사람 다스리는 법, 심문하는 법, 상대를 죄로 엮는 법 등 모두 12개의 ‘비책’을 각각의 장으로 다룬다.

‘권력은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백성을 무지몽매하게 만드는 데서 권력자의 총명함을 알 수 있다’, ‘이익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 선량하게 행동하는 것은 오직 어리석은 사람뿐이다’와 같이 마키아벨리보다 800년이나 앞서 냉철한 현실정치의 원리를 설파했다.

‘비밀스러운 일에는 다른 사람을 참여시키지 말고 계략에 참여한 사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굴종시킬 수 없는데 재능이 출중하다면 죽여야 한다’, ‘사람의 신체는 같아서 두려워하는 처벌도 같은데 그중 가장 두려워하는 방법으로 고문하면 굴복할 수밖에 없다’,’형벌로는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모함으로는 무슨 일이든 성사시킬 수 있다’ 등 비도덕적이고 사악한 정치기술로 가득하다.

저자는 “정신건강에 해로운 내용이 있어 독자 스스로 잘 걸러보기를 바란다”면서 “독자들이 계략을 꿰뚫어 보고 간계와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유익한 것을 취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누스. 493쪽. 1만8000원.

▲ 명리심리학 = 양창순 지음.

의학박사이면서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나름대로 익힌 명리학의 원리, 정신의학과 명리학의 관계, 사주팔자를 상담 등 임상에 활용한 사례 등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상담할 때 점이나 사주팔자를 본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졸이는 환자들을 보면서 무조건 이를 배격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외국의 한 정신과 의사로부터 “한국인들은 인생에서 문제가 생길 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기보다는 점을 보러 가는 경우가 많다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신과 의사로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선배 의사의 권유도 있고 해서 본격적으로 명리학을 공부하게 됐고 그것이 의외로 ‘학문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대학원까지 진학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환자들과의 상담에서 그동안 깨우친 명리학의 원리로 설명하면 대개 좋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책은 명리학을 삶의 길잡이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이어 정신의학과 명리학의 교차점에 관해 설명한다. ‘정신의학이 설계도면이라면 명리학은 입체도면’이라고 비유한다. 인지 개념, 집단 무의식, 투사의 방어기제 에로스와 타나토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나르시시즘 등 정신의학의 여러 키워드를 명리학의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도 말한다.

또 오행의 이치와 간략하게 사주를 풀어보는 방법, 정신의학과 명리학을 통해 본 성격의 5가지 유형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사주팔자로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 것이라면 애써 살 필요가 있느냐는 흔한 지적에 대해 저자는 “명리학은 운명이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기질과 성향을 파악해 강점은 더 개발하고 약점을 보완하며 내 안에 숨겨진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변화 시켜 주는 학문이 바로 명리학”이라고 강조한다.

다산북스. 308쪽. 1만6000원.

▲ 손의 왕관 = 김다은 지음

글자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서 이 소설은 출발했다고 한다.

글로 사람을 움직이고 싶은 작가가 성경 낱장으로 방을 도배해 놓고 불멸의 시나리오를 완성하려고 분투하는 이야기다.

인류 최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성경으로 둘러싸인 채 그는 언어와 인간의 상상력으로 세계를 번역하고 싶어한다.

그의 시나리오는 몇 가지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며 신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를 잇는 새로운 권능을 창조하려 애쓴다.

제3회 국민문학상을 받은 김다은이 쓴 장편소설이다. 그는 다양한 장편과 소설집, 서간집 등을 펴냈다. 프랑스 파리 제8 대학에서 불문학 박사를 딴 그는 현재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일한다.

은행나무출판사. 220쪽. 1만3000원.

▲ 남자는 놀라거나 무서워한다 = 박금산 지음

여성주의가 대세가 된 시대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는 중장년 남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처음엔 공포였지만, 여성의 언어에 적응하고 배워나가야 하는 일종의 관문으로 소설은 묘사한다.

주인공인 박 교수는 전형적인 한국 중장년 남성이다. 그는 페미니즘을 언어의 문제로 파악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 기다림을 수용하는 태도로 전환한다.

박금산 서울과기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8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도서출판 b. 304쪽. 1만4000원.

▲ 와즈다 = 하이파 알 만수르 지음, 김문주 옮김

12살 넘은 여성은 남자들이 있는 공공장소에 혼자 출입할 수 없고 취직이나 중요한 계약 등을 할 때 보호자 남성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외출할 때는 전통의상으로 온몸을 꽁꽁 가려야 하고 이동권도 제한돼 있다. 교육, 계좌 개설, 병 치료 등을 하려고 해도 남성 보호자 없이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런 율법을 어긴 여성에게는 매우 가혹한 처벌과 제재가 기다린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나라 여성들은 믿을 수 없겠지만, 아랍권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전히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여성이 교육을 받을 기회는 1960대에 들어서야 주어졌고 여성 운전은 불과 약 2년 전에 허용됐다.

여성 운전 허용은 사실 여성이 혼자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권리를 쟁취한다는 내용의 영화 ‘와즈다’에서 영향을 받은 측면이 크다. 이른바 ‘여성 이동권’ 보장의 태동인 셈이다.

2012년 제작한 영화 극본을 바탕으로 한 동명 청소년 소설 ‘와즈다’가 국내에 출간됐다. 당시 영화가 나오자 사우디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천 년간 이어져 온 율법이 개정됐다. 실제로 여성들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우디 최초의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열혈 여성’ 하이파 알 만수르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

열 살 소녀 와즈다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려 애쓰다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싸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자유’를 쟁취했다.

이 과정에서 평생 차별당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엄마는 남편의 의사에 반해 와즈다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출판사는 이 소설을 요즘 유행하는 ‘페미니즘 소설’로 한정했지만, 사실 이 소설의 독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깊다. 와즈다 이야기는 인간과 인권, 그리고 쟁취하긴 어려우나 잃기는 쉬운 ‘자유’에 관한 소중한 담론이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추천사에서 “좌절하지 않고 해맑게 금기에 도전하는 와즈다에게 응원을 건넨 와즈다 엄마처럼, 우리 현실에서도 수많은 도전과 응원의 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수리. 304쪽. 1만3000원

▲ 도덕경제학 = 새뮤얼 보울스 지음, 박용진·전용범·최정규 옮김.

‘보이지 않는 손’, ‘이기적 인간’이 경제를 작동하게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에 근거한 ‘인센티브’ 제도가 실제 사회와 시장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검증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했지만,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거나 효과가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를 가리켜 ‘몰아냄 효과’가 발생했다고 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보상이나 벌금이 없더라도 타인을 도우려는 성향이 있으며, 인간 본성의 이타심에 호소하지 않더라도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런데 경제적 인센티브가 이런 인상의 성향을 ‘몰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른 불공정, 격차에 관해 저자는 자유주의적 지향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3가지 조건, 즉 ‘자발적 참여’, ‘효율성’, ‘선호의 중립성’이 결코 동시에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이 근본 문제라고 설명하고 이를 논증한다.

그리고 이들 조건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선호의 중립성 조건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개인들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무엇에 따라 동기부여가 되는지를 사적 영역의 문제로 간주해 이에 대해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요구에 따라 제도를 설계할 경우 몰아냄 효과 등으로 인해 실패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이고 시민적 덕성을 갖춘 개인’이라는 전제 아래 시민들의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덕성을 발현할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흐름출판. 388쪽, 1만8000원.

▲ 힘주세요! = 리어 해저드 지음, 김수민 옮김.

영국에서 조산사로 일하며 수많은 여성의 분만을 도운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흥미롭고 감동적이며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분만실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임신하고도 몰래 담배를 피우던 15세 철부지 크리스털은 양수가 터지고 출산 병동으로 긴급히 이송되자 공포감을 느끼며 저자에게 간절히 매달린다.

암으로 투병하는 레즈비언 파트너의 난자와 제삼의 남성이 기증한 정자를 이용해 인공수정 시술로 임신한 엘리너, 여성 할례의 후유증으로 출산이 임박해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 하와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출산을 위해 병원을 찾은 산부들은 대개 조산사에게 의존하고 조산사를 신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한 스타는 은은한 향기가 나는 방에서 편안하게 기다리다 막상 견딜 수 없는 진통이 몰려오자 진료를 거부하고 난동을 부린다.

저자는 “산모가 출산 과정에서 조산사나 자신의 파트너에게 욕을 하는 건 전혀 새롭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산부가 욕설을 내뱉는 것은 진통이 강하며 분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좋은 징후가 될 수도 있다. 조산사들은 이런 정상적인 반응에 속 좁게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썼다.

현암사. 376쪽. 1만6000원.

▲ 미세먼지 제로 프로젝트 = 김동식·반기성 공저

기상 전문가인 저자들이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에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정부·기업·민간 차원의 대책까지 종합적으로 들여다본다.

미세먼지는 기후변화와 날씨, 산업과 교통, 전력발전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고리를 가진 전 지구적 환경의 문제이자 사회적 재난이다.

전 세계적 문제로 대두하는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세먼지 저감이 최우선 과제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범국가적 차원에서 미세먼지를 줄여야 한다는 국민의 강력한 요구는 2019년 국가기후환경회의 발족으로 이어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의견을 모았다. 국민정책참여단도 의견을 보탰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미세먼지 제로 프로젝트’가 시작됐지만, 이것은 첫걸음에 불과하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논의에서 도출된 단기 대책을 산업·발전·수송·생활 등 부문별로 상세히 설명한다.

이어서 올해 수립될 중장기 대책의 방향과 한반도 기후 위기와 미세먼지 탈출을 위한 국제협력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들은 “모두가 함께 행동해야 한다”면서 일반 국민 입장에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실천 방안, 고농도 미세먼지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실천 습관 등도 설명한다.

프리스마. 344쪽. 2만2000원.

▲ 떨리는 손 = 김창규 외 지음

평생 연구만 해온 과학자들이 공상과학소설(SF)을 직접 쓴다면 어떨까?

천문학자 이명현과 정경숙, 물리학자 이종필, 필명 하리하라로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은희가 SF 작가 김창규와 협업해 이런 작업에 도전했다.

그 결과물이 도서출판 사계절에서 펴낸 소설집 ‘떨리는 손’이다.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작가 못지않았다. 창의적이면서 전문성까지 빛나고 현실 비판 메시지까지 담았다.

이은희가 쓴 표제작 ‘떨리는 손’은 임신·출산·수유 등에서 양성이 부담을 함께한다는 내용을 통해 고정관념을 깬다.

이명현 ‘폴리아모리 유니베르스타’는 전파천문학자 부부의 딸인 ‘나’가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는 행성에 우주 돛대를 쏘아 올리는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과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종필 ‘동방홍 원정기’는 중국식당을 무대로 역사적 사실을 좇다 비슷한 사건이 연속되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들이 다중우주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다.

정경숙 ‘귀환’에서는 산소에 취약한 외계 지적 생명체가 지구에 불시착해 생존 위협을 느끼자 인간의 몸속 미생물로 변해 귀환을 기다린다.

김창규는 ‘고리’를 통해 판타지에 도전했다. 특별한 초능력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점점 이런 능력을 선하게 쓰는 방법을 알아간다.

사계절. 220쪽. 1만3000원

▲ 조용한 아내 =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바람둥이 남편과 심리학자 아내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정 심리 스릴러 소설이다.

남편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우고 이를 거짓말로 합리화한다. 미모에 사회적 성공까지 이룬 아내는 이 모든 사실을 알지만, 안정적 가정을 유지하고자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선’을 넘어 가정의 안정을 위협하고 아내는 냉철하고 잔인한 복수를 준비한다.

북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나 저자 A.S.A. 해리슨은 불행하게도 이를 모른 채 책이 출간되기 직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해리슨의 첫 소설이자 마지막 소설이다.

엘릭시르. 432쪽. 1만4500원.

▲ 특별관리대상자 = 주원규 지음

대한민국 중심부 광화문에서 테러 사태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다.

갈등과 혼란이 계속되면서 사회 시스템 안정을 위한 초법적 합의체 ‘컴퍼니’가 등장한다. 컴퍼니에서는 시스템 불온 지수가 임계점인 50을 넘으면 사회가 불안정한 것으로 보는 인공지능을 운용한다.

특히 컴퍼니는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인공지능을 활용해 ‘특별관리대상자’로 규정하고 걸러낸다. 불온지수 관리를 위해 이들 특별관리대상자를 ‘박멸’하는 역할은 비밀조직 ‘해적’이 맡는다.

완벽한 질서 유지를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킬 권리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소설은 묻는다.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주원규의 장편소설이다. 그는 드라마 기획에 참여하고 대본도 집필한다.

한겨레출판. 316쪽. 1만3800원.

▲ 저녁의 게임 = 오정희 지음

문학과지성사 소설 작가선 여섯번째 시리즈로 한국 현대 여성소설 원류 중 한 명인 오정희 작품을 엄선했다.

‘저 언덕’, ‘얼굴’, ‘옛우물’ 등 중단편 11편을 실었다.

오정희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8년 등단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받았다. 2003년 독일 리베라투르상을 받으며 한국인 최초로 외국에서 문학상에 선정되는 기록을 남겼다.

문학과지성사. 608쪽. 1만7000원.

▲ 타워 = 배명훈 지음

2009년 출간돼 한국 공상과학소설(SF)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작품을 11년 만에 복간했다. 배명훈 데뷔작이다.

인류 사상 최고 지상 최대 타워형 도시국가 빈스토크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빈스토크는 674층 건물로 50만 인구가 거주한다.

문학과지성사. 316쪽. 1만3000원.

▲ 루돌프 코는 정말 놀라운 코 = 고윤주 지음.

2005년 ‘루돌프연구소’를 설립해 지금까지 3000명이 넘는 어린이를 진단하고 치료한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자폐스펙트럼 장애’에 관해 이야기한다.

연구소 이름과 책 제목에 나오는 ‘루돌프’는 아주 특별한 코를 지닌 동요 속 사슴이다. 그 코 때문에 놀림당했지만, 결국 놀라운 능력이 알려지면서 모두에게 새롭게 인식되는 사슴이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저자는 ‘자폐적인 아이들’을 많이 만나면서 이들이 ‘소통하지 못하는 특별함’이라는 남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아이들은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그래서 이해받지 못하며, 쉽게 소통하지 못해 다른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 힘들다.

뉴턴과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앤디 워홀, 스티브 잡스, 안데르센 등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사람들 가운데 자폐적 기질을 가진 이가 적지 않다. 이들은 남들과는 다른 발상에 집착하고 몰두해서 인류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으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이 있어 개인적인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저자가 상담한 부모들 가운데는 자신이 아이를 잘못 키워서 ‘이상 성격’이 된 것이라고 자책하거나 자폐적인 아이를 집 안에서 격리해서 키우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폐적인 아이들은 ‘소통하지 못하는 특별함’이라는 선물을 DNA로 받았을 뿐,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싫어하거나 반사회적인 성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는 의미의 ‘자폐(自閉)’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궁리. 368쪽. 2만원.

▲ 다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 = 윤선영 지음.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잘 아는 사람은 드문 ‘천자문’을 곰곰이 읽고 그 뜻을 새기는 것으로 인문학을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천자문은 일관된 주제 없이 인간 생활과 관련한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포괄한다. 천상계와 자연현상에 관련한 내용으로 시작하지만, 고대 중국의 문명과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당대 훌륭한 지도자들과 위인들의 행적이 펼쳐지는가 하면, 유가의 도리와 처신 직분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또 역사적 인물과 관련한 고사가 흥미롭게 이어지기도 하지만 갑자기 의미 없는 어조사들이 나열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책은 성인들이 읽기에도 버거울 텐데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이 ‘하늘천 땅지’만 반복하다 천자문 읽기를 그만두는 이유다.

저자는 ‘천자문’ 속 고대 중국의 역사, 인물, 철학, 지리, 과학 등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물론 동양 철학에 대한 식견과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홍익출판사. 260쪽. 1만5800원.

▲ 쓰레기책 = 이동학 지음.

20대 초반 이후 정치의 세계에 뛰어들어 여러 자리에 도전했으나 실패를 맛본 청년이 어머니로부터 ‘지구촌장’으로 임명돼 2년간 지구촌 유랑을 떠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이 처한 고령화와 저출산, 이로 인해 파생되는 도시 내 갈등과 도시 소멸, 인구 집중과 같은 문제와 스마트 시티 등의 대안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61개국 157개 도시를 누비는 동안 쓰레기 재앙과 기후 재앙이 곧 닥칠 것이라는 절박함이 닥쳐와 다른 일을 제쳐두고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칭기즈칸 후예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찾아간 몽골 초원에는 쓰레기 산만 보일 뿐이고 이집트 카이로 외곽에 사는 많은 사람이 쓰레기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필리핀 바닷가 마을에서는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더미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히말라야산맥, 아이슬란드 빙하에서 하와이 해변, 아마존강 변, 세렝게티 초원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없는 곳이 없었다.

저자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지구촌 곳곳의 쓰레기 실태를 가감 없이 전하면서 “어두운 전망 속에서도 문제의식을 친구나 이웃들, 가족들과 나누고 해결책을 찾아간다면 희망은 꼭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도스. 276쪽. 1만6900원.

▲ 조리 도구의 세계 = 이용재 글, 정이용 그림.

음식 평론가인 저자가 조리 도구의 종류와 사용법을 꼼꼼히 설명한다. 그가 생각하는 주된 독자는 조리 전문가나 이국적인 요리에 도전하는 미식가가 아니라 원해서든 아니든 집에서 스스로 조리하는 ‘자가 조리자들’이다.

저자가 ‘주방사우’라고 부르는 측정 도구들, 즉 타이머, 저울, 온도계, 계량컵은 일반적인 가정 주방에서는 별로 쓰일 데가 없을 것 같지만, 조리 과정을 오랫동안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배워보지 못한 비숙련 자가 조리자들에게는 오히려 필수적인 도구다.

다음으로 다루는 도구는 식칼, 과도, 빵 칼, 스테이크 칼, 채칼 등 각종 칼 종류다. 채칼과 만돌린은 어떻게 다른지, 굳이 하나만 선택한다면 어느 쪽이어야 할지, 계란 썰개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 등을 알려준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조리하는 데 필요한 국자, 집게, 뒤집개, 거품기, 강판, 블렌더, 냄비, 솥, 찜기, 오븐, 토스터 등 온갖 도구의 쓰임새와 고르기 요령, 사용법 등을 설명한다.

나아가 주방 세제와 수세미, 솔, 식기세척기 등 세척과 정리에 필요한 도구들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설거지와 마무리 요령을 다루게 된다.

반비. 288쪽. 1만7000원.

▲ 편집가가 하는 일 = 피터 지나 엮음, 박중서 옮김.

미국 출판계 유수 편집가 26명이 현장에서 터득한 자신만의 통찰력과 그것이 어떻게 실무에 적용되는지를 풀어놓은 기고문들을 엮었다.

출판할 책 찾기, 제안서에서 완성본까지 편집 과정, 책을 독자에게 가져다주기까지 출판 전 과정에 필요한 작업을 설명한다.

또 순수 소설, 장르 소설, 비소설, 아동서, 전기·자서전·회고록, 학술서 등 분야별 서적의 편집 사례를 소개하고 변화하는 출판계에서 편집가 역할을 모색한다.

자가 출판 시 유의점이나 프리랜서 편집가가 사업자로서 경력을 쌓는 법 등 편집 일에 종사하거나 종사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실질적 조언을 들려준다.

‘editor’는 보통 편집자로 번역되며 ‘책의 기획부터 발행에 이르는 모든 일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도서 편집은 지식과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하는 일이며 여기에는 직업적인 전문성과 헌신이 요구되므로 이 책에서는 ‘편집’에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접미사 ‘가(家)’를 붙여 ‘편집가’로 번역한다.

열린책들. 552면. 2만2800원.

▲ 김지은입니다 = 김지은 지음.

2018년 3월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된 폭로와 그 후의 법정투쟁, 가해자의 유죄판결 확정 이후 상황에 대해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한다.

지난 2년간 진행된 사건 경과에 대한 설명과, ‘세상과 단절’이 극심했던 2019년 3월과 4월 일기 형식으로 적은 글과 함께 방송 인터뷰 전문, 동료·지지자의 탄원서와 최후 진술을 비롯한 재판 기록 등을 담았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2년 전 방송에 나가 피해 사실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 “살고 싶었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막고 싶었다. 그때는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세상에 외치는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세상을 향한 두 번째 말하기를 결심했다. 치열하게 적어낸 이 기록으로 나의 고통스러운 상황이 끝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적었다.

봄알람. 384쪽. 1만7000원.

▲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 강남순 지음.

페미니즘과 기독교 신학에 관한 글을 꾸준히 쓴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교수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펴낸 교양서.

그는 책의 주제인 페미니즘을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 비유한다. 인간 삶의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어서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최종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페미니즘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성차별이란 무엇인가’, ‘여성 혐오란 무엇인가’, ‘페미니즘은 하나인가’, ‘남성과 페미니즘은 어떤 관계인가’, ‘페미니즘은 어떤 세계를 지향하는가’, ‘페미니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일곱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러고는 페미니즘이 여성 차별을 비판하는 사상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에는 사람을 우월과 열등이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누는 모든 이분법적 사유 방식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생물학적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으며,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계층·성적 지향·장애로 인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페미니즘은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변혁 담론”이라며 “이론과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라고 강조한다.

한길사. 324쪽. 1만7000원.

▲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 = 윤미애 지음.

예술 비평에서 자주 인용되는 독일 평론가 발터 벤야민(1892∼1940) 사상을 ‘산책자’라는 화두로 재조명했다. 독일 괴팅겐대에서 벤야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파편적·사변적이라고 알려진 벤야민 사상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그는 벤야민의 핵심적 사유 방법론을 보여주고, 그의 성찰이 유년 시절 경험한 독일 베를린에서 유래했음을 확인한다.

보론으로 벤야민을 도시 산책으로 이끈 인물인 프란츠 헤셀, 지크프리트 크라카워가 쓴 도시 에세이를 다뤘다.

저자는 “산책자의 사유는 벤야민이 정통 인문학에서 관심을 두지 않은 영역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새로운 기술 매체에 대한 관심, 자본주의적 도시문화에 대한 미시적 시각은 세속적 문화를 세속적 언어로 포착하려는, 이른바 세속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학동네. 288쪽. 1만7000원.

▲ 도덕철학사 강의 = 존 롤스 지음. 바버라 허먼 엮음. 김은희 옮김.

‘정의론’ 저자로 유명한 존 롤스(1921∼2002)가 미국 하버드대에서 한 도덕철학 강의를 그의 제자가 2000년 단행본으로 엮었다.

롤스는 학생들이 필기하지 않도록 손으로 쓴 강의 원고를 제공했는데, 책은 1991년 강의 원고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그는 흄,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도덕철학을 소개한다. 특히 칸트 사상에 집중해 정언명령(定言命令) 절차 세부 내용보다는 절차 자체를 이해하고자 했다.

롤스 사상 원천과 칸트 사상 해석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이학사. 591쪽. 3만2000원.

▲ 작렬지 =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중국 반체제 작가 옌롄커(閻連科)의 명작 ‘딩씨 마을의 꿈’은 올해 초 중국 우한으로부터 급격히 번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연상케 한다.

옌롄커가 이런 작품들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중국 사회주의 정부의 진실 은폐와 인민 통제, 개인에 대한 억압이다.

문학은 구체적 허구와 상징을 통해 세계 보편적 진실을 말하는 작업이다. 선동에 속아 돈을 받고 피를 팔다가 에이즈에 걸려 무더기로 죽어 나가는 ‘딩씨 마을’의 우매함은 굳이 중국 변방 작은 마을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옌롄커가 최근 한국을 포함한 5개국 매체에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한 중국 당국의 언론·정보 통제와 왜곡을 비난하고 나선 것도 다른 평범한 작가들과는 구별되는 그의 역사의식과 작가 정신을 보여준다.

이처럼 옌롄커가 중국 당국의 숙청 위험에도 시진핑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내놓은 시점에 마침 그가 쓴 장편소설 ‘작렬지’가 국내에 번역돼 소개된다.

자음과모음. 664쪽. 1만5800원

▲ 고독자 = 루쉰 지음, 자오옌녠 그림, 이욱연 옮김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다. 옌롄커를 비롯한 현시대 중국 최고 작가들도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꼽는다.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서 표제작 ‘고독자’를 비롯한 주요 단편 7편을 엄선해 엮었다.

중국이 대혼란을 겪던 1924년부터 2년간 쓴 작품들로 개인사적 불화까지 겹쳐 매우 힘든 시기에 쓴 작품들이다. 그래서 작품집 내내 ‘고독’, ‘방황’, ‘절망’ 등의 키워드가 흐른다.

중국 판화계 거장 자오옌넨의 목각 판화를 주요 장면에 삽입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문학동네. 192쪽. 1만3000원.

▲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안 스파르 그림, 조동섭 옮김

월드 베스트셀러인 ‘빅 픽처’ 저자 더글러스 케네디와 프랑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조안 스파르가 함께 펴낸 동화 같은 힐링 소설이다.

열한 살 오로르는 뭔가 ‘다른’ 아이다. 사람들은 그를 자폐아라거나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오로르는 다른 게 틀린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저항하며 성장한다. 오로르는 소리로 말하는 대신 태블릿에 글을 써서 의사를 전달한다. 심지어 그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언니 에밀리의 생일에 오로르는 가족과 함께 간 ‘괴물 나라’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 루시를 발견한다. 루시는 이를 피해 도망쳤는데 늦은 밤까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오로르는 지금이야말로 숨겨둔 초능력을 사용할 때라고 생각한다. 

밝은세상. 240쪽. 1만5000원.

▲ 스웨덴 국세청 성공 스토리 = 레나르트 위트베이·안더스 스트리드 지음, 김지연 옮김.

여느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스웨덴에서도 ‘두려운 세금징수 기관’이던 국세청이 ‘사랑받는 서비스 기관’으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개혁 주역들이 설명한다.

스웨덴 국세청 소속 공무원들은 자신을 ‘세금을 징수하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을 뿐 ‘서비스 제공자’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또 세무조사나 가산세 부과, 범칙 조사 등 ‘강제집행’ 업무만이 진정한 업무라고 여겼다.

당연히 고객 응대 수준은 낮았고 그 결과 신뢰도도 높지 않았다. 직원들 자신도 국세청에 근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국세청의 강압적인 조사에 불만을 품고 독일로 이주하면서 “나는 내 적들이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열심히 일하고 또 판단력이 있는 권력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은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포커 게임 선수 집단이다”라고 국세청을 비난한 것을 계기로 국세청의 업무 수행 방식에 관해 문제점들이 지적됐으나 좀처럼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변화에 시동이 걸린 것은 1998년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공정하게 자기 몫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회’라는 국세청의 새 비전이 채택되면서부터였다. 여기에서 ‘자발적’이라는 단어가 핵심이었다.

오랜 논의를 거쳐 2006년 국세청은 이 비전에 입각해 신뢰를 높이고 고객을 더욱 잘 응대하는 일에 목적을 두기로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결정했다.

내부적인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납세자를 ‘민원인’이 아닌 ‘고객’으로 대하자는 태도는 점차 공감대를 넓혀갔다. 고객 응대 태도는 급여 산정 항목에도 반영됐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국세청은 민관을 통틀어 스웨덴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관의 하나로 자리할 수 있게 됐다. 2011년 337개 정부 기관 중 ‘가장 현대적인 기관 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에는 기업을 포함한 모든 공공·민간 단체 중 7위를 기록했다. 2012년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3%가 “국세청을 신뢰한다”고 답변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설립한 출판사 ‘세상’이 출간했다. ‘세상’은 세금, 납세자를 의미하는 ‘세’와 책의 지면을 뜻하는 ‘상’을 합친 말이다.

세상. 252쪽. 1만6000원.

▲ 일본 함정 = 김대홍 외 지음.

방송사에서 오늘날의 일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여러 편을 제작한 기자들이 일본을 취재하며 느낀 점과 미처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해 낸 책이다.

일본 우익과 기업을 취재할 때 느낀 신변 위협과 보이지 않는 압력, 시작 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힌 자위대 취재 등 TV 화면과는 다른 생생한 현장 이야기들을 전한다.

지난 1년간 일본의 국내 정치는 물론 외교, 안보, 경제, 사회 등 분야별로 취재한 저자들은 ‘지금의 일본은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데 생각을 같이하게 된다.

이미 일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공격적인 나라로 변해 있었고 오래전부터 우리의 약점이 무엇이고, 또 그 약점을 어떻게 이용해야 국제사회에서 지지받을 수 있는지 등을 철저히 계산해 왔다고 저자들은 본다.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공유하는 파트너가 아니라 우리의 발전을 가로막는 함정일 수 있다. 다만, 그 함정이 아무리 깊고 넓을지라도 우리가 철저히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올림. 384쪽. 1만8000원.

▲ 북중 머니 커넥션 = 이벌찬 지음.

잇단 핵·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 제재를 받는 북한이 별다른 타격 없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경제적 관점에서 추적해나간다.

저자는 랴오닝성 단둥, 다롄, 지린성 투먼, 옌지 등지의 대북 사업가들과 북한 무역상, 현지 주민들을 만나 취재한 결과 ‘결론은 중국’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2017년 -3.5%, 2018년 -4.18% 등 수치로 나타난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곤두박질치지만, 북한은 전혀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 뒤에 중국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가 본격화한 2017년 1334㎞에 달하는 북중 국경에서 양국 경제 거래는 오히려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 국경 다리와 통관 시설이 확충된 가운데 금지 품목이 대량으로 거래되고 소규모 밀무역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중국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었던 동북 3성은 지금 북한을 경제발전의 돌파구로 삼는다. 신의주와 마주 보는 단둥에는 명품 ‘구찌’ 매장이 개설됐다. 사실상 구찌의 ‘북한 1호점’이다.

저자는 앞으로 한국이 북한과 중국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북한의 주요 경제 파트너가 될 가능성보다는 중국이 북한 경제를 독점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면서 남북 경제교류가 막힌 상황에서 중국을 이용해 북한과 경제 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책들의정원. 220쪽. 1만5000원.

▲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 매기 앤드루스·재니스 로마스 지음. 홍승원 옮김.

여성의 삶은 무엇으로, 그리고 어떤 연유로 형성되고 재정립돼왔는가. 이 책은 여성들 삶에 영향을 미친 물건을 중심으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발달한 과정을 기록했다.

공저자는 여성사를 오래도록 연구한 영국 학자들이다. 이들은 생리대, 재봉틀, 냉장고 등 100가지 상징을 선별해 여성사 전말을 더듬어간다. 또한 여성이 남긴 풍부한 유산에 대해 눈을 열어주고, 여성이 어떻게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순응토록 조장됐으며, 그 같은 압박에 어떻게 맞서왔는지 들려준다.

오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이번 책은 영국이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지 100주년(2018년)이 되는 시점에 출간돼 의미를 더했다. 동서를 망라하고 가정에 국한돼 있던 여성들이 연대와 투쟁을 통해 공적 영역으로 나와 참정권을 획득하는 등 남성과 동등한 참여를 하게 된 것이다.

책은 ‘몸과 모성, 섹슈얼리티’, ‘아내와 가정주부’, ‘과학과 기술’, ‘패션과 의상’ 등 모두 여덟 가지 분야로 여성사 전말을 담아낸다.

웅진지식하우스. 456쪽. 1만9800원.

▲ 선택된 자연 = 김우재 지음.

초파리 유전학자인 저자는 26종 모델생물에 얽힌 이야기를 과학적·철학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책에서 언급한 모델생물은 초파리, 예쁜꼬마선충, 애기장대, 효모, 쥐, 돼지, 모기, 벼 등이다.

저자는 이들 모델생물의 독특한 특징부터 놀라운 과학적 발견과 생물학의 흐름, 선택의 주체인 과학자의 삶을 서술하며 내일의 생물학과 사회에 대한 고찰까지 진지하게 담아낸다.

예컨대, 먹을 수 있는 모델생물인 효모는 맥주, 와인, 빵 등에 사용되며 인류의 식생활을 한껏 풍성하게 했다. 미세한 이 효모가 유전학에서 가장 강력한 모델생물이라는 사실도 새롭다. 더러운 이미지를 대표하고 흑사병 같은 전염병의 매개로 여겨진 집쥐 또한 근대 의학의 영웅으로 재탄생하며 과학자들로부터 사랑받는다.

이 책은 모델생물에 얽힌 이야기를 단순히 독자에게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과학적 사유를 통해 사회에 첨예한 제언도 던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돼지 뒤에 역설적으로 공전하는 숭배와 혐오의 이미지를 토대로 한국사회의 극단적 이념 대립을 꼬집고 비판한다.

김영사. 284쪽. 1만4800원.

▲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 =스티브 브루사테 지음. 양병찬 옮김.

공룡은 어디서 왔을까? 그토록 강하고 거대한 존재가 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먹이사슬 최정상에 군림한 공룡들이 왜 갑자기 멸종하고 말았는가? 공룡은 수수께끼와 같은 동물이다.

미국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수집된 새로운 증거들로 지난 10년간 공룡에 관한 지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놨다. 이에 따라 ‘비늘로 뒤덮인 덩치 큰 야수’, ‘우둔한 파충류’ 정도로 간주된 공룡에 대한 관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환경에 잘 적용해 당대를 지배한 진화의 기린아’로 대체됐다.

1984년생 젊은 공룡학자인 저자는 지구촌 현장을 누비는 학문적 열정과 첨단 과학을 결합해 화석과 암석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공룡의 불가사의한 기원, 장관을 이룬 번성, 경이로운 다양성, 격변기 멸종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공룡의 세계를 되살려낸다.

그는 “우리가 진정으로 상기해야 할 것은 공룡의 멸종에서 얻어야 하는 뼈아픈 교훈”이라며 이같이 말한다.

“공룡은 1억5000만여 년 동안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활발히 활동해왔다. ‘신속한 대사’와 ‘거대한 몸집’이라는 초능력을 진화시켰으며, 경쟁자들을 연파하고 지구 전체를 지배했다. 하지만 백악기 말기에 문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말았다. 한때 공룡들이 썼던 왕관을 쓰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을까?”

웅진지식하우스. 452쪽. 2만원.

▲ 슬픔은 날개 달린 것 =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자와 사랑하는 엄마를 잃은 두 아이가 상실의 슬픔을 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 애도의 과정을 주관하는 것은 현명한 친척 어른이나 살가운 친구처럼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난데없이 집안으로 들이닥친 한 마리 말하는 까마귀다. 때로는 짓궂고 때로는 다정한, 거대하고 다재다능하며 사려 깊은 이 새는 극심한 상실의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 사람을 다시 삶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총 3부로 구성돼 있는 이 소설은 ‘아빠’ ‘아이들’ ‘까마귀’, 이렇게 세 화자가 돌아가면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풍경에 대한, 남겨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해두려는 듯, 소설은 남자의 아내가 사망한 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죽음은 말 그대로 ‘부재’로서만 존재한다.

문학동네. 176쪽. 1만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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