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식 개선 위해 위즈온 설립
사회적경제 통해 도약 발판 마련
정부·지자체 적극 지원과 맞물려
청년조직과 협업 문제 해결 가속

장애가 여행포기 이유돼선 안 돼
무장애여행 관련 정보 수집 집중
커뮤니티 맵핑 통한 데이터 구축
사회적경제 비즈니스모델로 성숙
 

청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사회엔 자신을 자신의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취직’으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청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업(業)으로 만들어내는 청년들이다. 여기엔 소통과 협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 ‘직업’인 경우도 포함된다. 청년의 삶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도전적인 대전지역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사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지 기록한다. 편집자

장애를 갖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특히 휠체어를 탈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라면 집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공포다. 많은 준비를 한다 하더라도 예상치 못 한 장벽에 가로막혀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기 일쑤다. 이 도움 자체가 장애인에겐 미안함이라 그 다음부턴 집 밖을 나서는 걸 주저하게 된다.

집 밖에 나섰는데 화장실이 급하면 그것도 낭패다. 비장애인은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지만 장애인은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찾기 위해 긴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오영진(35) 위즈온협동조합 이사장이 모두가 동등하게 기회와 경험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이유다.

위즈온협동조합 오영진 이사장

◆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하다

오 이사장은 근이영양증이라는 희소질환을 앓고 있다. 근육세포가 점점 파괴되는 질환이다. 그래서 보장구(전동휠체어) 없인 자력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똑똑한 아이였다. 학교공부도 곧잘 했다. 그래서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가져다 줄 상처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오 이사장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절보단 소통을 선택했다. 평균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는 질병을 가진 터라 남들보다 더 값진 인생을 살기로 맘먹었고 그만큼 더 열심히 공부했다. 당연히 대학 동기들보다 공부량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학우들을 도와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면서 세상과의 소통 폭도 넓어졌다. 이 과정에서 ‘내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의 졸업학점은 4.38이다.

“‘나는 무조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을 했는데 대학에 다니면서 제가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존재, 이런 상호보완적 관계에 눈을 뜨면서 자존감도 생겼죠. 이 때부터 공익적인 활동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우게 된 것 같아요.”

◆ 협동조합에서 꿈을 일구다

대학 졸업 후 IT(정보통신) 관련 일반 회사에서 쉽지 않은 5년의 직장생활을 한 오 이사장은 ‘웹 접근성’, 다시 말해 시·청각 장애인도 온라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홈페이지 운영체계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기회를 찾았고 2012년 위즈온을 설립했다.

그러나 창업 1년 만에 입주해 있던 건물이 매각되면서 다른 곳으로 사무실을 이전해야 할 상황에 봉착했고 재정난까지 겪게 됐다. 직원 임금까지 밀릴 처지에 놓였는데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직원들이 힘을 보태기로 한 거다. 오 이사장과 직원들은 임차보증금을 갹출해 새 사무실을 마련했다.

오 이사장은 이를 계기로 회사 형태를 협동조합으로 변경했고 이에 따라 대표 직함은 이사장으로, 직원은 조합원으로 바뀌었다. 오 이사장이 짊어졌던 책임감의 무게는 직원들과 나누면서 가벼워졌고 대신 조합원들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 등으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 현재 조합 구성원은 오 이사장을 포함해 모두 7명, 이 중 장애인이 3명이다.

“회사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협동조합이 갖는 장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직원들이 ‘내 일’만 생각하는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주라고 인식하면서 공동체성이 강화될 수 있었어요. 이런 경험이 바탕이 돼서 사회적경제에도 눈을 뜰 수 있게 됐습니다.”

위즈온협동조합 오영진 이사장

◆ 사회적경제 영역에 발을 내딛다

오 이사장은 대흥노마드(중구 중앙로 124, 2층)에서 사회적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위즈온을 비롯해 페토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 열린책장 등 청년 사회적기업 및 비영리단체가 모여 마련한 청년공간이다. 처음 2년간 대전시가 임대료를 지원하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 이사장의 최대 관심사이자 현재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바로 모두를 위해, 모두가 함께 만드는 ‘무장애여행 프로젝트’다. 장애인도 대전의 맛집, 명소 등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오 이사장이 이 프로젝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부터다. 장애인이 주민편의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드는 것이 첫 미션이었다. 그러나 몇몇 장애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처음엔 쉽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다양한 변수들에 대해 고려를 못 한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풀어야 할 과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의지는 조금씩 꺾였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오 이사장은 ‘사회적경제’ 확산과 맞물려 새로운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경쟁과 이윤을 넘어 상생과 나눔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적경제 조직들과의 연대를 통해 난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여기에 사회혁신플랫폼, 리빙랩 등 정부·지자체의 지원사업들이 연계되면서 오 이사장의 꿈은 날개를 달았다.

“사회적경제 조직들과의 소통을 통해 다양한 접근법과 방법론을 공유할 수 있었어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하니 길이 찾아지더라구요.”

오 이사장은 우선 대전사회혁신플랫폼을 통해 ‘무장애여행 프로젝트’를 의제화 했다. 여기에 대전시, 대전마케팅공사, 코레일, 한국가스기술공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이 참여하면서 단편적이지만 작은 성과도 도출했다. 장애인도 두려움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정보들을 홈페이지(moyeoyou.kr)에 담은 거다.

대전청년네트워크(대청넷) 1기 활동가로 참여했던 오 이사장은 다양한 분야의 청년활동가들과 교류하면서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리빙랩 실험을 통해 또 다른 가능성도 발견했다. ‘더불어 평등한 거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거다.

휠체어 장애인도 갈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된 이 리빙랩 프로젝트는 대흥·선화동 일원에서 100일간 진행됐다. 장애인식개선과 관련한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다양한 방법론들이 제시됐고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이 휠체어가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돕는 이동식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사로 설치 제안에 대한 동네 상인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장사도 잘 안 되는데 장애인 문제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눈치였다. 그래서 해법을 모색했다. 상인들에게도 이득이 되는 방법, 바로 길가에 내놓는 입간판(식당 메뉴나 판매 물품 등을 홍보하는 도구)을 경사로로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장애인을 돕는 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로 접근하니 상인들의 마음도 움직였고 그만큼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공간은 더 늘었다.

“장애가 여행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해요.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활동은 장애인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커뮤니티 맵핑 데이터로 쌓여가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맵핑(시민이 직접 불편사항을 지리정보시스템에 표시해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시민참여형 지도 제작 기술)이 활성화되면 사회 혁신도 그만큼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 이사장은 현재 무장애여행 프로젝트를 지속가능한 사회적경제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시켜 나가기위한 또 다른 과제를 풀어가고 있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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