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시인·한남대 강사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김지숙 시인(한남대 강사)

저문 강으로 무심코 내 발길 닿은 때 있었지. 흐르는 강이 자꾸만 잡아끄는 힘에 이끌려 마음이 먼저 당도해 있던 강. 나는 이내 거친 두 발로 강에 들고 자꾸 일렁이며 물위로 다가오던 얼굴. 미루나무도 물속으로 서서히 실뿌리 뻗어 내 발목에 감기던 기억. 흐르는 강을 따라가며 잠시도 멈추지 못하는 저녁 시간. 석양 마을에 아이들 뛰는 소리 달려와 내 어깨 두드리던 때. 하루가 까무룩히 기울어가던 저물녘이었지. 그때 나는 슬픔을 안고 더 깊어지는 강이 있어, 강이 홀로 밤을 새워 흐른다는 걸 알았지.

그래, 흐르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금강에 나가 당신도 나도 슬픔은 퍼다 버리자. 내가 시작한 곳, 엄마의 강으로 거슬러 오르자. 한밤에도 쉬지 않고 나를 감싸는 강. 그 긴 어둠의 터널 안쪽에서 컹. 컹. 짖으며 우리 몸을 뚫고 가는 샛강. 우리는 흘러, 함께 흘러 저녁이면 멀리서 다가오는 그리운 얼굴. 슬픔은 달빛처럼 강물에 잠기고. 우리는 강을 품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자. 어둠 뚫고 가자. <김지숙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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