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강변 꿈결같은 370리, 굽이치는 벅찬 감동

 

육로와 철도에 의해 강은 우리 삶에서 멀어졌지만 다시 가까워질 계기가 마련됐다.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슬로(slow)’ 문화가 꽃피면서 ‘천천히 즐기는 생활양식’이 삶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강의 소중함에 다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제주 ‘올레길’을 신호탄으로 ‘걷기’ 열풍이 불었고 이 바람은 ‘자전거’를 다시 생활필수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자연스럽게 ‘자전거길’도 빠른 속도로 조성됐다. ‘금강 자전거길’의 탄생 배경이랄 수 있다. 복잡한 도심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아 시원하게 내달려보지 않을 수 없다. 22일 공식 개통을 앞두고 ‘금강 종주 자전거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느껴보기로 했다.

 

'저질체력' 기자 5명. 도전이었다. 모험이었다. 

 

#1. 하루 : 대청댐 ~ 부여

'안구정화' 풍광에 입이 열리다

4월 13일 오전 9시 40분 대청댐. 기온이 8도 정도를 가리킨다. 습도는 30% 정도다. 기상청 예보대로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날씨다. 우선 대청댐물문화관에서 ‘자전거길 종주 인증수첩’을 구입했다. 주요 포인트(대청댐-세종보-공주보-백제보-금강하구)에서 인증도장을 모두 찍으면 ‘금강 자전거길 종주 인증서’를 준다. 성취욕을 자극할 수 있겠다 싶어 주저 없이 구입했다.

금강하구를 향해 146㎞, 비단물결의 흐름을 뒤쫓아 이제 출발이다. 일반적인 자전거 속도(시속 15㎞)를 유지하면서 페달을 밟으면 9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물론 자전거 초보인 관계로 이번 금강 자전거길 종주는 1박2일로 일정을 잡았다.

대청댐에서 신탄진 현도교까진 대부분 내리막이다.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 좋다. 출발이 상쾌하다. 현도교를 건너 ‘합강정’(28㎞)까진 충북 청원군 부강 땅으로 자전거길이 이어진다. 일반도로에서 자전거전용도로로, 다시 잠깐 철도와 나란히 달리다 평탄한 자전거전용도로를 타고 2시간 40분 정도 달려 합강공원(오토캠핑장·합강정)에 도착했다. 충북에서 흘러오는 미호천과 금강 본류가 만나는 지점이자 세종시가 시작되는 곳이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한 숨 돌리고 다시 출발.

금강변 전용도로를 따라 내달린다. 잘 보전된 생태습지가 압권이다. ‘원시의 초록’을 접하는 동안 벅찬 감동을 느끼며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경치 감상에 정신 팔린 사이 어느덧 희미하게 세종시 첫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합강공원에서 출발한지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세종보에 도착했다. 수첩에 인증도장 꽝 찍고 세종시 관문의 상징, 한두리교 아래에서 점심을 즐긴다. 이제 공주로 향할 시간이다.

 

세종 한두리교.

금강하구를 바라보고 금강 우안 자전거길에서 좌안 자전거길로 루트가 바뀐다. 출발 채비를 마치고 페달에 발을 올리는 순간 앗, 빗방울이 떨어진다. 자연이 또 다른 운치를 선사한다. 그런데 이번 라이딩의 첫 번째 고비가 찾아온다. 오르막이 아니라 엉덩이로 밀려드는 통증이다. 자전거 초보자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다리로 페달을 구를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자연히 속도가 줄어든다. 힘이 들면 저속으로 변속기어를 조정해 힘을 덜 들이면서 천천히 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공주 금강신관공원.

 

공주로 접어드는 길목, 철재 구조물이 얹혀진 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불티교다. 충남 산림박물관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불티교에 올라서자마자 또 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병풍처럼 버티고 서 있는 산을 따라 금강이 굽이쳐 흐른다. 고요함과 역동성이 공존하는 어우러짐의 극치다. 우안으로 갈아타고 다시 힘을 낸다. 금강하구까지 100㎞ 남았다는 표시가 나온다.

 

대청댐서 71㎞, 하구둑까지 75㎞

 

공주 시내에 진입했다. 공산성과 무령왕릉, 한옥마을을 스쳐 지나간다. ‘백제’의 향수가 저절로 느껴진다. 여기서 강줄기가 90도로 꺾여 부여로 방향을 잡는다. 오후 5시 30분 공주고마나루솔밭과 어우러진 공주보에 도착했다. 세 번째 도장을 찍으려면 공주보를 건너 공주보관리동으로 가야 하는데 공사 때문에 공주보 통행을 막아놨다. 아쉽지만 갈 길이 멀다. 다시 부여를 향해 출발.

35㎞ 정도를 더 가야 하는데 벌써 해가 뉘였뉘였 지고 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구간인데다 전체 구간의 절반인 73㎞ 지점에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고독과의 싸움이다. 3시간을 달려 백제보에 도착했다. 다른 구간에 비해 오르막이 많고 긴 탓에 힘겨운 코스지만 백제보의 야경을 감상하며 피로를 푼다. 오후 9시 백제보 조명등이 꺼진다. 1시간을 더 달려 부여 시내에 진입한다. 백제역사재현단지, 왕흥사지, 낙화암 등 사비백제의 숨결을 느끼며 하루를 정리한다. 몰려오는 피곤함을 느끼기도 전에 깊은 수면에 든다.

 

 

#2. 또 하루 : 부여 ~ 서천 금강하구둑

예상치 못한 선물, 동료애가 더 큰 감동

14일 아침, 짙게 깔린 안개 속에서 사비백제가 깨어난다. 전날과 달리 화창한 날씨가 이어질 징조다. 부여 시내를 감싸고 완만하게 굽이치는 금강은 논산 강경으로 향한다. 화창한 봄볕과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진 상쾌한 라이딩을 2시간가량 즐기는 사이 자전거는 어느덧 강경포구에 도착했다. 논산 탑정호에서 흘러온 논산천과 금강 본류가 만난다. 자전거길이 목재 데크 등으로 아가자기하게 꾸며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근대건축물이 즐비한 강경을 구석구석 돌아본 뒤 다시 금강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다.

 

부여~강경 구간.

 

황산대교 아래 수변은 친수·녹지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엔 방울토마토 비닐하우스가 밀집했던 곳이다. 강폭이 점점 넓어진다. 전북 익산 영역으로 접어들면 금강 줄기와 조금 간격을 둔 마을길을 이용하는 구간이 많다. 김대건 신부가 외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돌아와 감시를 피해 처음으로 육지를 밟은 곳, 성당마을. 산길을 달린다. 2차례에 걸쳐 급격한 오르막길을 타고 오르면 시원한 내리막이 기다린다.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웅포대교~신성리 갈대밭 구간.

 

제방길이 제법 많아진다. 금강을 내려다보면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맞바람이 거세진다. 하구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웅포대교가 눈앞에 가로질러 펼쳐진다. 강폭이 더 넓어진다. 금강이 하나 더 흐르는 느낌이 들 정도다. 웅장하다. 이대로 직진하면 군산이다. 다른 길을 택했다. 웅포대교를 건너 서천 쪽으로 길을 잡는다. 비포장과 포장길이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신성리 갈대밭~금강하구둑 구간.

서천 신성리 갈대밭에 도착했다. 금강 자전거길 종주가 막바지로 다다른다. 산 절개지를 끼고 자전거 길이 나 있다. 금강이 바로 옆으로 흐른다. 강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바닷가 방파제 위를 달리는 기분이다. 화양생태습지공원 조성도 막바지에 이른 듯 하다. 서해안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면서 금강하구둑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 속도에 가속이 붙는다. 오후 5시 30분 서천조류생태관에서 마지막 도장을 찍는다. 완주다. 서해로 시원하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하구둑에 막혀 다시 역류하는 금강의 모습은 애처롭다.

 

 

錦江, 민중의 삶, 민중의 젖줄 때론 비극의 강으로··· 충청인 희로애락이 흐른다

#1. 희로애락 품은 강은 역사다

인류 문명의 발생지는 큰 강을 근거로 한다. 그래서 강은 인류 문명, 생명의 시작이고 그 생명을 유지시켜준 젖줄이다. 강이 흐르는 곳, 그곳에 사람이 살았고 이 사람들의 삶의 기록, 역사도 흘렀다.

충청도를 가로지르는 금강(錦江)도 그랬다. ‘비단 물결’을 따라 충청인의 역사가 흘렀다.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의 구석기 유적,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 유적, 공주(웅진)·부여(사비) 백제 유적 모두 금강에 의지해 살았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백제 멸망 이후 금강은 ‘비극의 강’이 됐지만 그래도 때론 애잔하게, 때론 도도하게 금강은 쉼 없이 흘렀고 시대마다 민중의 삶을 원고지에, 화첩에 기록하고 그려낸 예술가들은 충청인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이런 금강을 통해 풀어냈다. 서사시 ‘금강’을 통해 금강을 ‘역사의 흐름을 일깨우는 강’으로 표현한 시인 신동엽이 그랬고 서사시 ‘전봉준’을 쓴 장효문도 그랬다. 장편소설 ‘탁류’를 통해 1930년대 후반 한국의 세태를 담아낸 채만식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중심엔 언제나 금강이 자리하고 있었다.

#2. 물길의 흥망성쇠…강은 원동력이다

강경은 조선 말기까지 평양·대구와 어깨를 나란히 한 전국 3대 시장의 하나였다. 바닷길을 통해 금강하구로 진입해 금강을 따라 내륙 깊숙한 곳까지 물건을 실은 배를 댄 곳이 바로 강경포구다.

육상으로의 물류 이동보다는 해상 물류이동이 쉬웠기 때문에 강경포구의 가치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예전에 금강은 아주 유용한 뱃길이었다. 금강하구에서 35㎞ 정도 떨어진 강경까지는 밀물 때 강물이 빠른 속도로 역류했다. 금강을 통해 작은 화물선은 충북 청원군 부강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다. 물론 이 뱃길을 따라 여객선도 운항했다.

그러나 경부선과 호남선이 차례로 개통되면서 인천과 부산이 물류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뱃길을 따라온 풍요로움은 철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제가 수탈을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1899년 군산항을 전략적으로 육성한 것도 강경의 쇠락을 앞당겼다. 일제 수탈의 규모가 커지면서 물자를 실어 나를 배의 규모도 커지자 수위가 낮은 강경은 값어치가 떨어졌다. 강경시대는 가고 군산시대가 열렸다. 쇠락의 길을 걷던 강경은 1989년 카운터펀치를 맞는다. 금강하구둑이 서해와 금강을 가로막으면서 뱃길은 완전히 끊겼고 강경의 숨도 여기서 멈췄다.
 

 
 금강 종주 자전거길 8경 

146㎞ 금강 종주 자전거길엔 8개의 볼거리 포인트가 펼쳐져 있다.

금강하구 철새도래지와 신성리갈대밭, 강경포구, 구드레공원, 왕진나루(백제보), 고마나루솔밭(공주보), 세종공원(세종보), 합강공원 등이 금강 자전거길의 구간 기준점이자 랜드 마크다.

금강하구는 겨울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특히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 십 만 마리 가창오리의 군무(群舞)는 탄성을 부르기에 충분할 정도로 벅찬 감동을 안겨 준다. 신성리갈대밭은 ‘공동경비구역 JSA’와 ‘추노’ 등 각종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갈대의 선율과 비단물결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강경포구는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금강유역 교역의 중심이었다. 도시 전체가 근대건축물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건축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구드레공원, 왕진나루, 고마나루솔밭은 금강 자전거길을 위한 부여와 공주의 새로운 쉼터다. 부소산성과 낙화암, 왕흥사지, 정림사지, 궁남지, 백제역사재현단지, 무령왕릉, 공산성 등 셀 수 없이 많은 백제 유적을 연계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다.

역사성을 담은 다른 볼거리와 달리 세종공원은 현대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미래지향적 쉼터의 모델을 제시한다. 가장 기대되는 경관 중 하나다. 현재 진행형이다. 합강공원은 생태환경을 간직한 자연학습장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된 공간이다. 요즘 말대로 ‘안구정화’ 제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금강과 주변 습지가 어우러진 모습은 마음까지 정화시킬 정도로 아름답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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