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사회부장

[금강일보 이기준 기자] 지난 1월 20일 중국 우한시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코로나19는 ‘블랙홀’처럼 국내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감염병 확산에 대한 우려는 ‘슈퍼전파자’(31번 확진자) 발생 이후 공포로 바뀌었고 순식간에 생활패턴·행동양식까지 바꿔 놨다. 국내 감염병 위기경보단계는 주의에서 경계로, 다시 심각단계로 빠르게 격상됐다. 코로나19 엄습 두 달 남짓, 확진자는 1만 명, 이 중 사망자는 200명을 넘어섰다.

또다시 찾아온 감염병 공포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됐지만 정부·지자체의 발 빠른 대처와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려는 시민의식, 이전 감염병 사태에서 배운 학습효과가 더해지면서 우리나라는 코로나19 극복의 모범적 사례들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각 나라마다 감염병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대처 역시 다를 수 있지만 감염병 대응에 있어 우리나라의 사례는 선진국들조차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감염병 대응 선방’에 대한 평가 이면에서 우리가 주목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가 도출됐다. 코로나19와 함께 전파된 ‘혐오(嫌惡)’ 바이러스다.

혐오는 말 그대로 역겨운 대상에 대한 거부반응, 즉 자신을 더럽힐 수 있는 무언가가 선(線)을 넘지 못하도록 막는 본능적인 방어기전이다. 과학·의학기술이 인류를 지켜주지 못 했던 시절, 혐오는 콜레라나 천연두 같은 감염원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유일한 본능적 수단이었다. 그러나 혐오가 특정 속성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을 향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혐오의 감정을 뒤집어씌우고 억압하는 순간 ‘인권·차별’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법철학자 마사 누수바움은 이 같은 ‘사회적으로 매개된 혐오’를 ‘투사적 혐오’로 정의했다. 중세 흑사병을 이용한 마녀사냥이 대표적이다.

이 투사적 혐오는 특히 정치적 행위를 통해 비약적으로 활성화된다. 마치 전쟁터와 같은 선거판에서 선동의 도구로 아주 유용하게 활용된다. 좌우 이념 대립에서 비롯된 분단국가의 특성에 기인해 ‘네편, 내편’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게 관행처럼 돼버린 우리나라 선거판에선 더욱 그렇다. 물론 ‘내편’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선거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 방법론이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라면 이는 시대적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상황과 맞물린 4·15 총선 국면에서 우리는 또다시 투사적 혐오의 그림자를 마주해야 했다. ‘우한폐렴’이라는 명칭이 대표적 사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 감염병과 관련해 특정 지명이나 사람 이름 등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는 것은 차별과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며 그렇게 하지 말 것을 권고했는데 WHO가 이번 감염병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명명한 이후에도 일부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우한폐렴’이라는 명칭을 지속적으로 사용해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한동안 이슈가 되기도 했다. ‘우한폐렴’에 담긴 정치적 수사는 ‘중국인 출입금지’, ‘중국(인) 포비아’라는 사회적 혐오와 연결되면서 ‘차별’이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이후 우리는 미국 등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똑같이 혐오의 대상이 됐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우한 교민 수용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대한 투사적 혐오는 일부 보수정당 총선 예비후보들이 가세한 ‘우한 교민 수용 결사반대’ 집회 현장(충남 아산)에서도 그대로 투영됐다. 선거국면이 무르익으면서 보수야권뿐만 아니라 여권에서도 혐오와 차별을 조장할 수 있는 발언들이 나와 ‘누구가’의 마음을 후벼판다.

감염병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특정 계층·종교·단체·정파에 대한 혐오 등 다양한 투사적 혐오 이슈와 마주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혐오를 부추기는 비이성적 선거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민주적인 소통, 즉 정책선거에 대한 바람이 커지지만 늘 좌절하고 만다. 공급자 측면에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 보이니 결국 문제 해결은 수요자인 유권자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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