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일 총선특별취재반

[금강일보 최일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이란 수석어보다는 ‘벌써’, ‘어느새’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21대 총선 분위기다. 코로나19 여파로 이전 선거에 비해 조용하게 진행된 득표전이 막판에 이르며 어느덧 D-5일이 도래, 사전투표일(10·11일)을 맞았다.

지난 2012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 처음 도입됐고, 전국 단위 선거로는 2014년 6·4 지방선거부터 전면 시행된 사전투표는 선거 당일 투표할 수 없는 유권자들에게 부재자 신고를 하지 않고도 신분증만 소지하면 전국 어디서나 편리하게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그동안 갖가지 논란이 일고 억측이 제기돼 왔다. 사전투표가 ‘특정 진영에 유리한 제도’(통상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젊은층의 투표 참여가 늘어난 것으로 진보 진영에 유리한 것으로 해석)라는 주장부터 “유권자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유출돼 비밀투표 원칙이 침해된다”(신분증과 지문을 인식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투표용지에 일련번호가 기록돼 누가 어느 후보, 어느 정당을 찍었는지가 전부 노출된다는 주장), “본투표일 전에 투표용지를 바꿔치기할 수 있다”, “중국이나 북한에서 사전투표 시스템에 해킹을 시도해 조작할 수 있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전투표가 공직선거법 위반이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대부분 뚜렷한 근거가 없는 낭설이고, 선관위는 사전투표와 관련된 허위사실 유포자들을 단속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관적인 ‘음모론’을 차치하더라도 사전투표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선거일 닷새 전, 사흘 전 이틀간 투표 행위를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민심을 왜곡시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전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로선 그 이후 선거일까지 남은 3~4일 안에 불거질 수 있는 각종 변수와 차단되는 셈이 된다. 사후에 중차대한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한 번 던진 표를 되돌릴 수 없게 돼 적지 않은 비중(전국 사전투표율-2016년 20대 총선 12.19%, 2017년 19대 대선 26.06%, 2018년 7회 지방선거 20.14%)을 차지하는 사전투표 표심에는 돌발변수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전투표에서 내가 지지한 특정 후보의 부정·비리, 파렴치한 부도덕성이 사전투표 종료 후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리 배신감을 느끼고 후회를 한다 해도 이미 던진 표를 무효화하고 재투표를 할 수 없다.

후보 단일화 작업도 사전투표와 배치되곤 한다. 일부 진영에서 선거운동기간 막판 단일화에 극적인 합의를 이루는데, 사전투표 이후 최종 주자가 가려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사퇴를 한 후보를 미리 찍어놓은 사전투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된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 후보 단일화가 추진되고 있는 충남 당진(미래통합당 김동완, 무소속 정용선)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물론 뒤늦게 단일화를 하려는 후보들 탓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사전투표 제도로 인해 단일화 효과는 크게 반감되고, 부지런히 사전투표소를 찾아 주권을 행사한 일부 유권자들은 의미 없는 표를 던진 애먼 피해자가 된다.

사전투표는 적극 투표층, 각 당의 충성도가 강한 지지층의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되곤 하지만 여와 야, 진보와 보수, 당리당략 차원을 넘어 재고(再考)해 봐야 할 선거제도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사전투표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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