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천주교 대전교구장, 부활절 메시지

천주교 대전교구장인 유흥식 라자로 주교가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를 테마로 2020년 예수 부활 대축일(4월 12일) 메시지를 발표,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은혜로운 기회로 만들고, 4·15 총선을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증대시키는 계기로 삼을 것을 강조했다.

다음은 유 주교의 메시지 전문.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죽음의 상징과도 같은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주님의 천사는 여인들에게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라고 말합니다. 이는 세상을 지배하는 최종적 힘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에 있다는 장엄한 선포입니다.

1.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기를 은혜로운 기회로 만듭시다

올해 부활은 그 어느 해보다 더 절실함을 느낍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에 공동체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았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공동체가 함께 봉헌하는 미사도 중단된 가운데 광야의 사순 시기를 보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큰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창궐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히 권하면서 이웃을 만나지 못하는 특별한 상황이 됐습니다. 언론매체를 통해 미사에 참여하고, 성당에 가기도 힘들었고, 신부님과 수녀님은 물론이고 형제자매들을 만나는 기쁨도 없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겪으며 우리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음도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한 채 홀로 안위를 누릴 수 없습니다. 생명을 잃은 이와 그 가족들, 많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실직자가 늘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코로나19 창궐을 막아주시고, 이처럼 무서운 전염병을 통해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교회에게,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은총의 계기로 만들어 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청합시다.

2.순교영성을 살고, 성(聖) 김대건, 가경자(可敬者)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합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의 장한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을 맞아 유네스코(UNESCO)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습니다. 우리 교구 솔뫼에서 탄생하신 성 김대건 신부님께서 우리 교회와 우리나라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 존중, 보편적 형제애, 평화 증진에 크게 이바지했음을 세계가 인정하는 기쁨과 영광을 체험하는 기간에 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올해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부터 내년 11월 27일까지를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에서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은혜롭게 보내기 위해 요청한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으로 선포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우리는 교구 시노드를 통해 순교영성에 대해 깊이 조명해 보고 이를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 구체적으로 구현시키는 길에 대해 함께 논의했습니다. 순교는 가장 높은 단계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은 희망에서 나옵니다. 만일 우리가 희망을 세상의 유한한 것들에 두고 있다면, 세속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며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이야말로 모든 인간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내년은 우리 교구에 속하는 지역에서 태어나시고 신앙을 전달받아 키우셨던 자랑스러운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흔히 두 신부님을 ‘피의 순교’와 ‘백색 순교’라는 말로 구별해 설명하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생명에 둔 희망을 세상에 힘있게 증언했다는 점에서 두 신부님은 모두 순교영성의 훌륭한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신부님께서 보여주신 빛나는 순교영성이 우리 안에 확고히 뿌리내리는 기쁘고 은혜로운 한 해가 되길 바라고 기도하면서 두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의 해를 함께 마음 모아 준비하고 맞이합시다.

3.공동선을 증가시키는 총선거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기쁜 축제인 부활 팔부에, 앞으로 4년 동안 이 사회를 위해 봉사할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를 합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하므로 매우 숭고한 사명이고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 참여는 의무”라고 강조하시면서 사회와 국민과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보내 주시도록 늘 기도하고 계십니다. 참된 민주주의는 성숙한 국민의 책임의식에서 맺어지는 열매이며, 신앙인의 정치생활에 대한 참여는 도덕적 의무입니다.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좌우되기보다는 봉사의 정신으로 공동선에 이바지할 수 있는 덕목을 갖춘 정직한 일꾼에게 투표합시다.

우리는 지난 20대 국회의 끊임없는 정쟁과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을 봐왔습니다. 진정으로 국민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정치인이 필요한 때입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인, 생태와 환경을 보호하고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여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을 뽑읍시다. 막말을 일삼고 큰소리치며 군림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을 지닌 정치인을 뽑읍시다. 무관심 속에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나와의 이해관계가 아닌 복음의 논리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투표하도록 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여 평화를 얻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평화를 가장한 어두움이며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불러올 뿐입니다. 쉴 새 없이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더 많이 갖기 위하여” 만을 외치며 전쟁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심으로써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로운 부활의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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