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했던 지역연극 인프라
대전연극제 통해 활기 찾아
작품질 향상 전국무대 진출
지역연극 활성화 위해선
시립극단 창단 시급한 숙제

[금강일보 김지현 기자] 연극은 굴곡진 우리네 인생사를 진솔하게 담아 관객들에게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선사한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사람 사는 이야기가 연극엔 있다. 지난 30년 전 대전 연극의 저변을 쌓아 올리는 순간부터 오늘의 발전상을 고스란히 곁에 서 지켜봐 온 복영한 대전연극협회장을 만나 지역 연극의 변천과 새 도전에 나서는 대전연극제가 지닌 의미를 들어봤다.

올해 38회째를 맞는 대한민국연극제에 앞서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극단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지역예선전이 펼쳐진다. 오는 19일까지 개최되는 제29회 대전연극제가 그것이다. 내년이면 30년, 복 회장은 지난 1991년 첫 시작하던 때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연극제가 처음 생겼을 땐 지역 연극이 활성화됐을 때가 아니었다. 또 대전이 광역시로 승격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충남과 대전에서 각각 작품을 출품했다”며 “지금처럼 소극장도, 연극인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나름 예선 열기가 쟁쟁했다. 물론 단일팀으로 계속 참가한다는 게 쉽지 않았고 그러다가 10년 후 정식적으로 대전연극제 예선이 생겼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벌써 세 번의 세월을 보내온 대전연극제는 그간 지역 연극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연극제가 생긴 이후 눈에 띄게 연극인들이 늘어났고 대회를 치르며 지역 연극계의 역량도 덩달아 성장했다.

복 회장은 “연극제를 시작한 이후 지역에 극단들이 점차 생겨나면서 기본적인 발전 토대가 마련됐다”며 “대회에서 경합을 벌여야만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연극이 활성화됐고 연극인들도 많이 생겼다. 경쟁 속에서 성장하면서 대전 연극 발전으로 이어진 건 적잖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난관도 많았다. 대전 연극의 인프라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부족했던 게 대표적이다. 소극장이 없던 그 시절 시민회관이 유일한 공연장이었고 극단에서 활동해야만 연극의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탓이다.

그는 “대전예술가의집은 과거 대전시립연정국악원이었고 그 이전엔 시민회관이었다. 회관 안에 대극장과 소극장이 있었는데 그 중 소극장이 유일하게 연극인들의 공간이었다”며 “연극 관련학과는 전무 했고 인터넷도 원활하지 않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선배들로부터 배우는 게 전부였다. 물론 지금은 단체나 장르 다변화로 세월의 깊이만큼 학습 효과도 나아졌다. 대전연극제를 기점으로 지역 연극계는 극과 극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계단씩 성장한 대전 연극은 이제 지역이 아닌 전국을 무대로 뛴다. 지난 2016년 ‘철수의 난’, 2018 ‘아버지 없는 아이’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초연들이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의 영예를 거머쥐면서 대전 연극의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다졌다. 내부에서의 창작 초연과 연극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복 회장이 “대전연극제에 나오는 작품들은 대중성에만 치우치지 않는다”며 “단순히 대중성이 뛰어나다고 상을 줄 수는 없다. 극 안에서 인간과 세상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말한 이유다.

대전연극제가 지역 연극계의 튼실한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퍽 녹록지 않은 지역 연극 현장의 어려움은 자못 아쉬운 대목이다. 더욱이 연극계의 숙원인 대전시립극단 창단 역시 이렇다 할 결론을 짓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어 연극인의 한 사람으로서 복 회장의 속내도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그는 “연극이 대전에서 활성화되려면 생산과 소비가 맞아야 한다. 관객을 어떻게 끌어올 것인지, 단체들은 어떤 좋은 공연을 만들지, 예술가들의 복지는 어떻게 올릴 것인지 등 코앞이 아니라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정책적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며 “그중에서도 민선 7기 공약에도 포함됐던 대전시립극단 설치를 통해 공정 지원을 꾀하고 시민들의 연극 향유성을 올려야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복 회장은 “시립극단의 본거지를 원도심에 두고 상임단원제가 아닌 오디션을 통해 연출가, 감독, 배우를 뽑아 객관화를 키우는 등 대전만의 모범답안을 만들었으니 이제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갈무리했다.

글·사진=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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