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으로 쌓아올린 삶, 울림 전하는 행복
충남대 출신 다섯명의 멤버
음악전공 1명 비전공자 4명
오직 목소리로 무대 채우는
아카펠라 매력에 빠져 도전
지역 넘어 세계무대서 러브콜

국제 아카펠라 컴페티션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나린. 나린 제공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청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사회엔 자신을 자신의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취직’으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청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업(業)으로 만들어내는 청년들이다. 여기엔 소통과 협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 ‘직업’인 경우도 포함된다. 청년의 삶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도전적인 대전지역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사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지 기록한다. 편집자

아카펠라 그룹 나린. 나린 제공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정작 무엇이 그 길인지 모른 채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한때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선택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랬고 금전적인 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다 합쳐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었단다. 나를 위한 삶을 고민하기 시작한 거다. 속된 말로 ‘삽질’을 한 적도 많았지만 그러면서 하나씩 배워나갔다. 결국 그 삽질 또한 내 선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고단한 일상을 하나씩 걷어내고 아직은 끝 모를 인생의 길 위에 켜켜이 쌓아 올려진 여러 선택들을 보며 깨달았다고 했다. 행복은 다른 게 아니라 내 선택이 내 삶을 이루는 것임을. 아카펠라 그룹 나린을 통해 오색빛깔 찬란한 목소리의 대향연을 선사하고 있는 피끓는 청춘 방학현(29) 씨 얘기다.

 

‘나린’ 방학현 씨

◆ 음악의 첫 페이지를 연 ‘목소리’

음악은 아무런 악기 없이 인간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됐다. 신에 대한 경외, 자연의 경이, 일상의 행복과 조우했을 때의 그 감격과 희열이 노래가 됐을 거다. 그중 음악의 첫 페이지를 열었던 목소리는 단연 최고의 악기다. 특히 목소리만으로 마음의 울림을 표현했던 음악의 첫 지점과 맞닿아있는 아카펠라가 그렇다. 일체의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목소리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아카펠라는 그래서 더 순수하고 감동적이다.

“대부분이 오해하는 게 아카펠라는 장르가 아닌 음악의 표현방법이에요. 악기 없이 사람의 목소리로 음악을 표현하는 거죠. 보통 현대 아카펠라에서는 가장 중요한 베이스를 비롯해 최소 4명은 돼야 기본적인 음률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나린의 경우 비트박스를 담당하는 저와 소프라노(김서영), 알토(정보인), 테너(김종하), 베이스(김기홍) 이렇게 다섯 명으로 꾸려져 있는데 보컬 한 명 한 명의 기량이 인원 많은 팀보다 티가 나요.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셈이죠. 그래서 부단한 노력으로 각자의 캐릭터를 잘 살리고, 보는 이들에겐 눈에 잘 보이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나린을 떠받치고 있는 구성원들의 면면은 자못 심상찮다. 속내를 드러내진 않으나 뭐 하나에 꽂히는 순간 앞뒤 재지 않는 부산 사나이 방 씨가 아카펠라에 뛰어든 후 그룹 결성을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하고 삼고초려 뛰어넘는 설득 끝에 만난 오늘의 멤버들은 충남대생이었던 걸 제외하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들어맞는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아카펠라 하나로 멋들어지게 성공하겠다는 의지와 결기 충만한 청춘들의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멤버들은 충남대 출신인데 다섯 명 모두 전공이 달라요. 국어국문학과, 동물바이오시스템과학과, 독어독문학과를 제외하면 사실 음악을 공부한 건 성악과 출신 하나뿐이죠. 전공이나 관심사가 다른 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목소리만으로 무대를 채우는 아카펠라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나린을 만든 거니까요.”
 

‘나린’ 방학현 씨

◆ 절망의 순간 찾아온 한마디 “포옹하라”

누구나 그렇듯 나린의 시작도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다못해 연습실도 없었고 무일푼인 그들이 설 자리는 썩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비어있는 캠퍼스 동아리방을, 또 어떤 날은 길가 벤치를 전전하며 연습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어려운 일, 고된 일 겪은 뒤엔 즐겁고 좋은 일 찾아온다고 어느덧 4년의 세월을 보낸 지금 나린의 활동 영역은 이미 대전을 훌쩍 넘어 세계로 향해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나린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건 우리에겐 희비(喜悲)가 같이 오는 일이 많다는 거예요.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함께 오거나 그 반대의 경우처럼요. 지난 2017년 인천에서 열린 국제 아카펠라 컴페티션 때는 사실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동상을 받고도 찝찝한 마음이 컸거든요. 정말 다른 팀들 공연을 보면서 우린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현실을 절감했습니다. 그런 상태로 이듬해 홍콩에서 개최된 보컬 아시아 페스티벌 아시안컵 경연에 참가했는데 하다 하다 리허설까지 잘 안 풀리면서 정말 초상집 분위기가 돼 버렸죠.”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은 있다. 잔뜩 풀 죽은 그들이 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세계적으로 명성 자자한 아카펠라 리얼그룹(Real Group)을 만나면서다. 울상 가득한 그들에게 리얼그룹의 멤버가 남긴 말은 단 하나, “포옹하라”였다.

“그때까진 솔직히 그 말이 가슴엔 잘 와닿진 않았어요. 근데 공연 직전 갑자기 그 말이 떠올라 ‘어차피 상에 미련도 없으니 서로 한 번 안아보기라도 하자’ 했는데 웬걸요, 덜컥 우승을 해버렸죠. 그 전에 엄청 슬펐는데 되게 기쁘기도 하고 제겐 터닝포인트였습니다. 더 열심히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원래는 생명공학 전공이라 대학원에 갈 생각을 하던 찰나에 이 대회를 기점으로 ‘음악으로 해도 재밌겠다. 성공할 수 있겠다’ 해서 진로를 이쪽으로 돌리게 됐죠.”

 

‘나린’ 방학현 씨가 이준섭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아칸소의 기립박수…다시 꿈을 꾸다

결성 2년이 채 되지 않아서 받은 두 번의 수상만 해도 큰 용기를 가져다준 결실인데 그는 뒤이어 미국 아칸소에서의 보이스잼 아카펠라 페스티벌은 영원히 무대 위에 나린을 묶어둘 것만 같다고 했다. 목소리만으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하라는 소명의식을 깨우쳐 준 평생 가도 잊기 힘든 기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면서다.

“홍콩 대회를 우승한 특권으로 보이스잼 아카펠라 페스티벌에 초청돼 아칸소 주 왈튼아트센터 무대에 섰는데 우리 공연이 끝나자마자 1000명이 넘는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내더라고요. 그 장면은 그야말로 소름이죠. 마치 영화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으니까요. 평소에 공연을 하면 관객 반응이 매번 달라서 힘들 때가 많았는데 미국에서의 그 광경은 왜 아카펠라를 놓지 말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해줬습니다.”

남들은 꿈을 크게 꾸라는데 그는 다르다. 방 씨에겐 어떤 꿈을 꾸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가 자신의 꿈을 향한 내적 동기의 크기를 더 면밀히 살피는 까닭이기도 하다. 요즘 그것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뜨거운 진정성을 가졌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왜 아카펠라를 택한 것인지 늘 생각해보곤 합니다. 누군가는 아카펠라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 하지만 저는 충분히 대중성이나 잠재력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확신해요. 우리 노래를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언젠가 나린 이름 뒤에 아카펠라라는 단어를 빼고도 설명되는 그런 그룹을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돼야 사람들에게 그저 한 번 듣고 지나가는 팀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팀이 될 수 있으니까요.”

방 씨에게 선택에 대한 확신은 확고했다. 선택한 후에는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것, 무수한 고심 끝에 내린 그 결정은 장담컨대 곧 최선의 선택이 될 거라는 것이다.

글=이준섭 기자 ljs@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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