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일 정치부장

[금강일보 최일 기자] 올해 초 한 방송사에서 주관한 토론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을 했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을 전망해 보는 시간이었는데, “대전의 판세를 어떻게 예상하느냐”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을 기준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현재 차지하고 있는 대전의 지역구 의석 3석(동구·중구·대덕구)을 사수하는 것도 힘겨울 것으로 보입니다. 3석을 지키기만 해도 한국당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선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함께 자리한 정치평론가가 반론을 제기했다.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이번엔 야당이 크게 이길 것입니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거세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했던 2018년 지방선거와는 분명 다른 양상을 띨 겁니다.”

토론을 마친 후 ‘사담(私談)도 아닌 공개적인 방송에서 내가 괜한 말을 했나. 전문가 앞에서 실언을 했나’라는 자책도 들고, ‘한국당 관계자가 내 얘길 들었다면 참으로 서운했겠구나’라는 생각에 괜스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지난 3개월간 문득문득 ‘과연 내 말이 맞을까? 정치평론가의 말이 맞을까?’ 혼자 내기를 하듯 마음을 졸이며, 실제 어떤 결과가 도출될 것인가 궁금해했다.

내가 제1야당의 고전을 예상한 것에 무슨 뚜렷한 근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집권여당으로선 경제 폭망에 대한 야당의 공세와 조국 사태,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의 악재가 산적해 있는 데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까지 장악하고 있는 터라, 이번 총선에선 반대의 민심이 표출될 것이란 예상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여당으로선 설상가상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와도 직면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비등해지고,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며 정부의 무능과 실정이 부각되고, 여당은 궁지로 내몰렸다. 야당이 20대 총선(2016년)과 19대 대선(2017년), 제7회 지방선거(2018년)에서 당한 굴욕적인 3연패의 고리를 끊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분위기가 급변했다. 코로나19가 여당에게 악재로, 야당에게 호기가 되며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야당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지만, ‘정부가 코로나19에 잘 대응을 했다. 세계적으로 수범사례로 꼽힌다’라는 평가로 여론이 반전됐다. 선거일이 가까워 오면서 일일 확진자 수가 30명 이하로 떨어졌고, 문 대통령 지지도는 확연한 오름세를 띠며 여당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선거일인 15일 오전 한 방송에 출연해 판세 분석을 하면서 여당의 확연한 우세 양상에 관해 얘기했다. 3개월 전과 마찬가지로 “대전에선 미래통합당이 현역 의원 지역구 3곳을 지켜내기도 버거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자 방송을 접한 보수 성향의 일부 지역민들이 ‘왜 그렇게 보느냐’라는 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사실상 여당의 승리가 예견되긴 했다. 하지만 15일 밤 개표 방송을 통해 전해진 21대 총선 결과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 정도일 줄이야. 설마 하는 마음으로 대전에서 ‘7대 0’, 충청권 전체로는 ‘20대 8’의 일방적인 스코어가 나올 수 있다고 장난처럼 떠들어대곤 했는데, 이것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참담하다. 진보가 득세하고, 보수가 참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것 때문에 그렇다. 미래통합당이 석권을 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감정이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JP(김종필)가 이끌던 지역정당 자유민주연합이 충청권을 휩쓸 때 느꼈던 황망함과 비슷하다. 그나마 당시엔 자민련이 YS(김영삼)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던 때였다. 21대 총선은 친문으로 대표되는 패권세력 민주당에게 일방독주의 날개를 달아줬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회와 지방의회를 독식하는 건 분명 우려되는 대목이다.

‘당선되신 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낙선되신 분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민심은 코로나19를 잘 대처한 정부에게 앞으로 경제를 살리고 더 잘하라고 힘을 실어줬습니다. 결코 여당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지난 4년간 사사건건 국정 발목을 잡고 제대로 일을 안 한 야당 심판의 의미도 큽니다. 이제 지역 발전과 위기에 처한 나라 발전에 협력해 힘을 쏟으시길 바랍니다.’

이번 총선에 대한 대전의 한 유권자의 총평으로 왠지 공허해지는 심정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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