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시인·한남대 강사

 
김지숙 시인(한남대 강사)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저 강물에도 욕심이란 게 있을까

무엇이든 버리고서야 가벼워지는 몸,

가벼워져 흐를 수 있는 몸,

나는 하늘처럼 호수를 다 마시고도 늘 배가 고프다

셀로판지처럼 반짝이는 물결무늬 끝자락에 눈을 맞추고

오래오래 강가를 서성거린다

어쩌면 저 물결무늬는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난 이의 눈물이거나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어느 별의 반쪽이거나

오랜 침묵이 눈 뜨고 일어서는 발자국 소리 같은 것,

나는 오늘도 싯다르타처럼 강가에 앉아

돌아올 수 없는 그 누군가를, 그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물결무늬 결 따라 강 하류에 이르면

누대에 세우지 못한 집 한 채 세우듯

조약돌 울음소리 가득 차 흐르는 강변에서

나는 싯다르타처럼 혼자 가는 법을 배운다

바라문을 뛰쳐나온 그의 황량한 발자국에 꾹꾹 찍힌

화인 같은,

세상 그림자를 지우며 가는 법을 배운다

강물 속에는 높은 하늘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맑은 날의 하늘도 흐린 날의 하늘도 그 속에 모두 품고 가는 것이 강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늘 아래 나무 한 그루, 그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나뭇잎 한 장, 거기 잎맥 사이 비집고 들어간 작은 벌레 하나까지도 끌어안고 가는 것이 강물의 넉넉함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힘으로 천리를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주 강가를 서성거렸습니다. 물결무늬 결 따라 걸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듣게 됐습니다. 조약돌 울음소리 가득 차 흐르는 소리를요. 강물은 흐르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모서리를 내어 줬을까요. 더 넓어지기 위해 더 깊어지기 위해 가벼워지는 일. 품에 안은 것들을 하나씩 혼자서 지우는 일. 그게 강물이 지닌 넉넉함이었습니다. 하늘처럼 큰 호수를 다 마시고도 자꾸만 배가 고팠던 나에게 그날 금강 물결이 다가와 들려줬습니다. 그때 황량한 발자국에 꾹꾹 찍힌 세상 그림자 지우며 살아가는 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김지숙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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