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대전새미래초 교사

 

[금강일보] 국어사전에서 ‘낯설다’의 뜻을 찾아보면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라고 표기돼 있다. 나는 거기에 호기심과 설렘 그리고 불편함이란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묘한 설렘과 호기심을 갖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기꺼이 즐긴다. 낯모르는 상황에서는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도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짐을 꾸리고 나서는 것을 보면 낯섦이 그렇게 나쁘다고 볼 수 없겠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은 낯설어서 불편한데 심지어 무섭기까지 하다. 여기에는 설렘도 호기심도 자리 잡기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이 낯선 일들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우리에게 적응하라고 요구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영화관은 물론이고 가까운 공원에 가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우리보다 더 엄격하게 외출을 규제하는 외국에서는 집 앞으로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일에도 마음이 설렌다는 기사를 읽고 웃을 수만은 없었다. 사람의 움직임이 멈춘 이 생경한 세상에서 많은 곳이 힘들다고 한다. 등교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등장한 온라인 개학은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 모두가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나이가 들면서 꽤 익숙해진 세상에서 지루할 수도 있는 삶인데 요즘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분주하다. 조금만 버티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바람과 달리,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건 어쩜 영원히 힘들지 모른다는 말들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한다.

이런 우리의 상황과 달리 코로나의 영향으로 오히려 지구의 공기가 깨끗해졌고, 물이 맑아졌다고 한다. 인적이 끊긴 거리에 야생동물들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사서 마시는 물이 익숙한 지 오래되었고, 미세먼지에 짜증나는 일도 이제 어제오늘이 아니게 됐다. 이상기후에 하루하루 멸종되어가는 생물이 늘어만 가는 세상을 살면서도,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모르는 척 외면하며 살았다.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서 늘 그러리라 생각했기에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멈춘 세상에서 그들이 다시 돌아오고,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그동안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익숙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낯선 환경에 놓이고 나서야 깨닫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자연이 코로나라는 시련을 보내준 것일까? 더 늦기 전에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펴야 우리도 살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일까?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북적거리는 교실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그날이 정말 다시 오기나 할까? 많은 물음표와 함께 간절한 바람으로 오늘을 참고 기다린다. 그날이 곧 오리라 믿으면서! 익숙한 그날이 다시 돌아올 때는 함께 살아가는 자연에 대한 관심이 이전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언제 또다시 우리를 낯선 그곳으로 내몰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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