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옥 남선초 교사

 

10여 년 전쯤 일이다. 이제는 10년 차 경력교사로서 어느 정도 학급경영에 자신이 있던 때, 옆 반 신규선생님에게 큰 깨달음을 얻었다. 새로 맡은 아이들이 다른 해에 비해 유독 말을 듣지 않아, 하루하루가 고통이고 너무나 피곤한 3월이었다. ‘이런 학생들과 어떻게 일 년을 보낼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교직경력 채 1년도 되지 않은 옆 반 선생님은 아이들과 어찌나 평화롭게 지내던지….

큰 탈 없이 학급을 경영한다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지냈는데, 자신을 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정한 엄격한 규칙과 가르침 속에서 우리 반 학생들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인성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인성 교육이 아닌 교과 교육에 더 치중하고 있었다. 국어 수학 점수에 더 관심을 두고, 주요 과목 점수가 낮은 학생에게는 보충지도를 통해서라도 만회시키고자 했다. 또 점검표에 일일이 그날그날의 잘못된 행동을 표시해가며 지도하니, 태도의 개선이 크게 이루어지지도 않으면서 아이들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다.

그동안 잘 적용되었던 방법이라도 한계에 부딪힌다면 뭔가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때부터 내가 먼저 달라지고자 학생 지도 프로그램을 구안했다. 학교에서의 교육을 콩나물 키우기와 유사하다고 보고, ‘콩나물샤워’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했다. ‘콩나물샤워’ 프로그램을 적용하며 일 년 동안 인성 교육에 특히 주안점을 두어 지도했다. 콩나물을 기르기 위해 콩을 시루에 안치고 매일 물을 주면 그 물은 시루 밑으로 다 빠져나가지만, 그 과정이 반복될수록 콩에서는 싹이 트고 결국 영양가 있는 콩나물로 자란다. 교사의 가르침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물세례’이고, 학생들은 물세례를 받고 쑥쑥 자라나는 작은 ‘콩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는 퇴근 후에도 다시 우리 반 학생들을 만나서 재미있는 활동을 할 내일이 기다려질 정도였고, 학생들도 많이 달라졌다. 학생들이 보내 준 편지로, 나의 가르침이 모두 헛수고는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 제가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는 선생님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해서 죄송해요. 이제부터 더 노력할게요.’, ‘선생님, 지난번에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가 잘 지키지 못했어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줄로만 알았던 말들을 학생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훈화할 때는 주의 깊게 듣는 것 같지 않더니, 지적했던 잘못을 다음에 또 되풀이하더니, 그 가르침을 모두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은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물세례를 받으며 작은 콩은 영양가 있는 콩나물로 자라난다. ‘콩나물샤워’를 통해 학생들도 자란다. 작은 가르침들이 학생들에게 올바른 인성을 길러주는 훌륭한 물세례가 될 것을 믿으며, 오늘도 콩나물샤워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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