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금강일보 김도운 논설위원 기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사회 전체를 깜짝 놀라게 하는 극악한 범죄가 발생한다. 일반적 상식을 가진 이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이 터져 공분을 자아내는 일이 수시로 터진다. 방송과 신문의 뉴스는 사건의 잔악성을 앞다퉈 보도하고 국민적 분개를 자극한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언제부터인가 가장 빠르게 국민의 정서를 표출하는 창구가 된 청와대 게시판에는 약속이나 한 듯 극악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달라는 국민 청원이 러시를 이룬다. 단 며칠 만에 수십만 건의 청원이 접수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접수되는 청원은 흉악범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정 정당이나 종교집단을 해산시켜 달라는 청원이 올라오는가 하면 법률의 제정이나 파기 등의 내용을 담기도 한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누군가의 권리를 묵살해 달라는 청원도 한두 건이 아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내용의 청원도 많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누군가를 공격하는 내용의 청원이 특히 많다. 벌떼 같이 달려들어 마녀사냥식 분풀이를 하는 사례가 넘쳐난다.

극악한 범죄가 발생하면 처벌 수위를 극대화해 엄벌에 처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억울하게 피해를 본 이들을 대신해 분한 마음을 표출하고 사회악을 발본색원하자는 의미를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처벌의 수위를 높이자는 주장만 하늘을 찌르는 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다수의 생각대로 온 국민을 분노로 몰고 가는 흉악범죄는 처벌이 미약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처벌의 수위만 높이면 그것이 무서워서 유사한 범죄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수그러들까.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는 극악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처벌을 극대화하자는 여론이 비등하지만, 이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못 된다.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서라도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극소수에 머문다. 비용과 시간이 들지 않고 효과는 빠를 것 같은 관련법 제정과 양형 가중의 주장만 되풀이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형법을 강화하는 방법만으로는 흉악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일벌백계는 사회적 병폐를 치유하는 근본적 처방이 못 된다.

범죄에 대한 대책 마련은 전방위적이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의식개선 프로그램이 가동돼야 하고, 생계를 이유로 범죄에 나서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교육을 통해 사회 부적응자들을 교화하는 방법도 강구돼야 한다. 병이 나면 그 대책으로 수술을 하고, 환부를 도려내는 방법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면역력을 높이고, 기초체력을 강화해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방법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여서 공공의 면역력을 키우고 구성원들의 정서를 순화시키려는 노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비용과 시간을 들여 사회적 면역을 키울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고 있다.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경제 대국이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을 지향하는 국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회의 병리를 제대로 진단하고 장기적인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하기에 앞서 엄벌주의가 유일한 해법이란 생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범죄뿐 아니라 모든 사회문제에 접근할 때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에 최우선의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도록 교화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나와 다른 이를 무차별 혐오하고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의식을 탈피해야 할 시점이다. 큰 비용이 들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악의 씨가 발아하지 못하도록 사회적 치유법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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