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잇는 고향길에서 ‘대전여행의 참맛’을 배우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잊고 있던 꿈 다시 펼쳐 좇아
여행자·주민 함께하는 공정여행
대전의 가치 알리고 소통에 초점
“코로나19 여파 힘들기도 하지만
내일 위한 재충전시간이라 여겨”

박진석 진DoL 대표(오른쪽)가 마을공정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행자들을 가이드하고 있다. 진DoL 제공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청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사회엔 자신을 자신의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취직’으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청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업(業)으로 만들어내는 청년들이다. 여기엔 소통과 협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 ‘직업’인 경우도 포함된다. 청년의 삶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도전적인 대전지역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사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지 기록한다. 편집자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는 여행과도 같다. 그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 어제는 역사가 되고, 내일은 미스터리가 되며 오늘은 곧 선물인 나날을 지나왔다. 20대 후반, 안정을 찾는 그 나이 또래들과 달리 그는 평범함을 버리고 퇴사라는 과감한 결단을 했다. 그리곤 가슴 속 오래도록 묵혀온 여행기획자라는 자신의 꿈을 하나씩 세상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도전이라는 길 위에는 두려움과 고독이 도사리지만 그는 ‘사람’의 힘으로 이를 가뿐히 넘었다. “그 길 걸어도 괜찮아.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조금 더뎌도 너만의 길을 잘 걷고 있다”는 사람들의 무조건적 응원이 험난한 파고를 넘는 힘이 됐단다. 그래서 그는 지금 사람과의 여행 중이다. 그들의 눈으로 그의 고향을 보며 여행의 참맛을 배우고 있는 박진석(35) 진DoL 대표를 만났다.

 

◆ Daejeon Of Life

35년을 살면서 그는 고향 대전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굳이 꼽자면 군 생활로 인한 강제적(?) 부재기가 전부다. 학창시절 친구들로부터 ‘진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박 대표가 여행창업을 꿈꾼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사실 여행창업은 대학 때 관광경영학을 전공하면서 결심했어요.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 역사와 지리를 참 좋아했는데 ‘대학 생활을 어떻게 해야 의미 있게 보낼까’ 생각해보니 여행을 가면 역사나 지리적인 지식이 수반돼야 하니 여행기획자만큼 좋은 게 없겠다 싶었던 거죠.”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 온다고 했다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대학을 졸업한 후 그의 직업은 남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리저리 일상에 치이고,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박 대표의 인생은 누군가의 말마따나 아픈 청춘을 걷고 있었다.

“모든 게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또 인생이잖아요. 저 역시 대학 졸업하고 나선 만만찮은 현실에 꿈을 접고 지역의 한 홍보대행사 사업관리 담당으로 취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힘듦과 방황 속에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바로 던지고 나왔죠. 사직서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던 그가 지독했던 현실과 결별하고 곧장 찾은 곳은 제주도와 태국 치앙마이. 그곳에서 박 대표는 일면식 하나없는 이들과 만나면서 소소하지만 값진 행복을 느꼈다. 어쩌면 그 경험이 2020년 그의 일터이자 쉼터인 진DoL을 낳았으리라.

“제주도와 태국을 다녀온 후 여행창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해 진DoL을 만들었죠. 지난해 5월 출발한 진DoL은 제 이름 ‘진’과 ‘Daejeon Of Life’의 약자를 딴 겁니다. 진DoL은 공정여행에 신경을 쏟고 있어요. 대전을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지역을 소개하기 위해 이것저것 기획도 하고, 운영도 하는 거죠. 아직까지 공정여행 프로그램으로 버는 수익은 많지 않아서 한국관광공사 예비관광벤처 사업이나 문화체육관광부 관광두레피디 사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 소제동·대동을 거닐다

박 대표에게 진DoL은 고향을 걷는 일터요, 휴식의 공간이다. 뭇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할 법도 하지만 그는 지난 1년 진DoL과 함께 공정여행을 테마로 고향의 터줏대감답게 대전을 찾는 여행자들과 소제동 골목, 대동마을 곳곳을 분주히 누볐다. 올바른 여행 문화를 알리고 대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 깊은 가치를 발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평소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공정여행은 관광학적으로 보면 의미가 여러 개지만 그건 학문적인 거고, 실제론 여행자와 지역민이 함께 행복한 여행이라고 보면 됩니다. 통상 여행 프로그램 대부분이 지역민은 배제되고 여행자가 중심인 게 현실이죠. 공정여행은 그 한계를 벗어나 여행자와 지역민이 직접 소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박 대표가 직접 가이드로 나서는 공정여행은 적게는 4명, 많게는 8명까지 소규모로 운영되는 게 특징이다. 소제관사촌, 소제동 카페골목, 대동벽화마을, 대동하늘공원 등을 거닐며 골목 구석구석 옛 동네가 간직한 소소한 마을 풍경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하늘에는 노을과 야경이 선보이는 판타지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면서 여행자들은 소통을 통해 관계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공정여행의 의미를 깨우치고 돌아간다.

“제가 생각하는 여행은 일상의 익숙함을 벗어나 낯섦을 여행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많은 분들이 소제동, 대동은 예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건축, 골목들이 참 매력적이라고 말씀하세요. 소제동 골목에 들어선 트렌디한 카페를 둘러보는 재미, 해넘이가 일품인 대동을 걷다 보면 굳이 많은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대전이 달리 보일걸요?”
 

◆ 내일을 위한 잠시 멈춤

여행창업에 뛰어든 지 딱 1년, 그의 행보에 잠시 제동이 걸렸다. 코로나19의 여파를 박 대표 역시 피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위기 앞에 한없이 약할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코로나19를 기회로 삼을 요량이다. 그래서 박 대표는 요즘 머릿속에 여행자와 지역민을 위한 더 공정한 여행을 그리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 살고 있다.

“코로나19는 사실 제겐 여유를 갖고 일하게 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태껏 쉼 없이 달리기만 했잖아요. 코로나19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 일을 더 오래 끌고 갈 발판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요즘은 공정여행의 고도화를 고민하기도 하고 제 경험을 지역에 전파해서 대전의 가치를 여행자들에게 좀 더 의미 있게 전달할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지속 가능을 위한 잠깐의 휴식인 거죠.”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쳐도 새벽 5시 반이면 그의 또 다른 일상이 열린다. 변함없이 새벽 운동으로 아침을 시작해 계속되는 회의와 미팅에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지만 박 대표는 바쁨 그 자체가 그리도 좋단다. 이쯤이면 남들보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다는 그의 천성은 쉬 떨쳐내기 어렵겠다는 확신마저 들게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 스트레스는 크게 받지 않아요. 개인적으론 지역에서 주민 사업체를 운영하는 분들에게 제 노하우를 전달해서 여행자에게 매력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컨설팅도 해주고 싶고 미약한 지식이나마 청년들과 공유해 대전도 관광으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려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죠.”

무엇이든 경험해보지 않으면 실체를 알 수 없어 불안하기 마련이다. 모든 일이 그렇다. 박 대표도 한때 꿈과 이상 속에서 방황을 거듭했다. 하지만 막상 그 불안을 딛고 도전하니 잊고 있던 오랜 꿈을 마주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을 손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목표와 계획을 세우며 하나씩 실천을 거듭해 온 그는 이젠 자신이 닦아온 그 길 따라 행복으로 가는 항해를 즐기고 있다.

글=이준섭 기자 ljs@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