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보통 학살은 점령군이 원주민에게 자행합니다. 그러나 6·25전쟁 시기에는 대한민국 군경이 국민을 죽였습니다. 자그마치 전국적으로 1000회가 넘고 30만 명이 죽어갔습니다.
누가 죽었을까요? 보도연맹, 구속수감 중이던 좌익인사, 제주 4·3사건 관련자, 여순사건 관련 인물들이 죽었습니다. 여기서 보도연맹이란 이승만의 제1공화국에서 1949년 4월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하기 위해 조직된 관변단체였습니다. 보도연맹이 뭔지도 모르고 보리쌀 준다고 이름 석 자 적고 간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배우 이은주가 그렇게 죽습니다.
빨갱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을 뽑아 교화시키겠다며 마을 이장을 닦달해서 많은 사람이 이름을 적도록 했습니다. 지역마다 경쟁하듯 인원 수를 늘린 것은 우리 안에 위험분자들이 많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심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좌익인사는 대표적으로 남쪽만 선거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남북협상에 돌입했던 김구 선생님과 김규식 선생님, 그리고 여운형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빨갱이였나요?
좌익은 단독정부 구성을 반대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통일을 지지하는 세력이었습니다. 4·3사건은 5·10총선거를 거부하다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여순사건은 제주의 양민을 죽이라는 명령에 불복종한 사건입니다.
그렇게 치면 단순해집니다. 남한의 단독정부를 세우겠다는 이승만에게는 적이 됩니다. 대전에 이승만이 도착하고 다음 날인 1950년 6월 28일부터 시작된 골령골학살 뒤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요?
까놓고 이승만일까? 소심한 배후 정치전문가로서 나는 이승만이 30만 명을 죽일 깜냥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또 그 뒤에 누가 있었을까요? Bob E, Edwards 중령에 집중해보십시오. 극동아시아 모든 학살에 들어가있는 이름입니다. 남한 단독정부를 주장한 또 다른 배후가 있었습니다.
반드시 지켜야했습니다. 불쌍한 대리전쟁에 불쌍한 대전사람만 다 죽었습니다. 흰옷은 민간인, 국방색은 재소자였습니다. 그날 미군에 의해 남은 사진에는 흰옷이 상당히 많이 보입니다. 표지석조차 찾기 힘든 골령골을 방치하고 있는 대전시도 70년 기억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